62년의
시간을 담은 공간
글 편집실 사진 백기광 영상 김수현
천안 대명약국 안범기 약사*
60여 년 동안 한결같이 동네 한편을 지키며 영성동의 변화를 함께한 대명약국. 동네 사람들이 믿고 찾는 1차 의료기관이자 갑자기 아프면 밤에도 달려가 문을 두드릴 수 있는 비빌 언덕이기도 했다. 그동안의 시간은 수많은 이야기로 남아 대명약국을 특별한 공간으로 만들어 준다.
#천안에서 두 번째로 문을 연 약국
“우리 대명약국은 천안에서 두 번째로 문을 연 약국이에요. 제가 1960년에 약대를 졸업하고 곧 입대해서 1963년 4월에 제대했는데, 그해 8월에 약국 문을 열었어요. 건너편 시계방 자리에서 시작했다가 2년 뒤 1965년에 이 자리로 이사 와서 지금까지 하고 있지요.”
천안 영성동의 한 골목 코너에 자리한 대명약국. 이곳에 들어서면 세월의 깊이를 느끼게 하는 묵직한 약 진열장이 약국의 나이를 가늠하게 해준다. 목수였던 처남이 약국 오픈 기념으로 직접 만들어주었다는 약장은 크기도 크고 수납 공간도 넉넉해 대명약국의 벽 한쪽을 꽉 채운다.
지금은 천안만 해도 300여 개가 넘는 약국이 영업 중이지만, 병원이 흔치 않았던 1960년대엔 약국도 귀했다. 그리고 당시엔 동네 약국 약사가 주민들의 주치의였다. 전문의약품과 일반의약품이 구분되기 전이었고 약사가 환자의 상태를 보고 약을 조제할 수 있어 ‘약 잘 짓는다’는 소문이 나면 사람들이 몰려들곤 했다. 안범기 약사도 대명약국 약을 먹고 다 나았다는 인사를 많이 받아봤다.
“이 동네를 떠난 분들도 가끔 찾아와요. ‘지금도 약국을 하시냐’는 인사말도 종종 듣지요. 당뇨, 혈압 없고 약주도 안 하고 귀도 잘 들리니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문을 열어야죠.”
#부모님 뒷바라지에 장학금으로 보답
1937년 천안 성거읍에서 태어난 안범기 약사는 천안농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공부를 잘했던 그는 교사가 되고 싶었고 학교에서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교 수학교육과에 원서를 내주었다.
큰 기대를 품고 반에서 1, 2등을 다투던 친구와 둘이 입시를 치렀다. 하지만 친구는 합격하고 안범기 약사는 고배를 마셔야 했다.
“담임 선생님 뵐 면목이 없었어요. 다행히 후기 성균관대학교 약대에 지원했는데 합격을 했어요. 넉넉지 못했던 형편이라 서울에 있는 대학에 다니는 아들 등록금을 마련하신다고 부모님이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시골에서 농사짓는데 무슨 돈이 있겠어요. 등록금을 내려고 이웃 동네에 가서 쌀을 얻어 팔기도 하고 큰 소도 한 마리 팔고 논도 팔고 그러셨지요. 부모님이 날 가르치려고 저렇게 고생하시는데 나도 최선을 다해야겠다 마음먹고 열심히 공부했지요. 그랬더니 장학생이 되더라고요. 그다음부터는 등록금 걱정하기 싫어서 더 열심히 했어요.”
안범기 약사는 대학 시절 자취하는 동안 한 고생은 말로 다 못 한다며 손사레를 친다. 자취방에 수도가 없어 새벽 2~3시에 지게를 지고 물을 길어 오기도 했고, 한 푼이라도 아껴 써야 하니 늘 배가 고픈 시절이었다. 그래도 고향에서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생각하며 견딜 수 있었다고 한다.
#급하면 달려오는 주민들의 안식처
“캄캄해지고 인적이 드물어지면 약국 문을 닫고 위층으로 올라가요. 위층에 집이 있거든요. 저녁먹고 자려고 하면 문을 막 두드려요. 체했거나 배가 아프다면서 약 좀 달라고 하는 동네 주민이죠. 당시 약국 문이 함석으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그 소리가 참 요란합니다. 얼마나 급하면 뛰어왔을까 싶어 얼른 증상에 맞게 약을 지어주곤 했어요. 다시 올라와서 자려고 하면 또 막 문을 두드립니다. 아이가 갑자기 열이 나니 급하게 약국으로 달려온 거죠. 다시 문을 열고 약을 지어주곤 했어요.”
그렇게 밤낮 없던 시절도 지나가고 이젠 여유가 생겼다. 지금은 24시간 문을 여는 편의점이나 매장에서도 약을 살 수 있고, 처방전이 있어야 조제가 가능하니 근처에 병원이 많지 않은 대명약국에서는 소화제나 감기약 같은 일반의약품이나 드링크류가 주요 판매 물품이다.
“약사 자격증이 있으니 이렇게 약국 문을 열고 창문 너머로 지나다니는 사람들 구경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거예요. 아무 할 일 없이 집에만 있는다면 참 답답한 시간을 보내고 있겠죠. 여행이고 노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어떻게 늘 그럴 수 있겠어요. 매일 일할 수 있고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이 약국이라는 공간이 나한테는 참 고맙지요.”
예전의 분주함은 없지만 평생을 같이해온 약국은 안범기 약사에게 무엇보다 소중한 공간이다. 수없이 여닫은 진열장과 가루약을 만들던 약주발, 하얀 가운과 왼쪽 주머니 위에 달린 명찰까지…. 귀중한 물건들과 함께한 시간이 스며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약국 문을 열겠다는 안범기 약사의 바람이 오래도록 지켜졌으면 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