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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증상에
약은 두세 가지?

오랜 기간 약을 사용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루에도 여러 번 시간 맞춰 약을 복용하고 주사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약이 한두 개도 아닙니다. 증상별로 여러 개의 약을 모아 보면 각각 무슨 약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한 가지 증상에 여러 가지 약을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정희진 울산대학교병원 약제팀 약사

장기간 치료가 필요한 증상은 한 가지 이유로만 생기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고혈압은 교감 신경, 호르몬, 몸 안의 나트륨과 물의 양 등 여러 가지 조절 과정의 영향을 받습니다. 혈관이 좁고, 혈액이 찐득해지고, 같은 시간 동안 심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혈액이 많고, 몸 안의 수분량이 늘어나면 혈압이 높아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상황에서 혈관을 넓히는 약물만 사용한다면 혈압을 낮추는 효과가 그리 크지 않을 것입니다. 혈압을 높일 수 있는 다른 이유들은 그대로 있으니까요.

만약 혈관을 넓히는 약물 하나만 아주 많이 사용해서 다른 이유들의 영향이 없을 정도로 혈관을 넓힌다면 혈압은 낮출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경우엔 다른 문제가 생깁니다. 바로 약물 부작용입니다. 약을 많이, 빨리, 장기간 투여할수록 부작용이 생길 확률이 커집니다.

고혈압 관리를 위해 약을 여러 가지 쓰자니 힘들어서 한 가지 약을 많이 쓴다면, 그 약의 효과뿐 아니라 부작용 또한 함께 커집니다. 그러니 혈관을 넓히는 약 한 가지만 많이 쓰는 것보다는, 호르몬 균형을 맞추는 약과 체내 물의 양을 조절해 주는 약을 함께 쓰면 혈압을 높이는 여러 원인을 동시에 공략할 수 있겠죠. 그리고 약들을 조금씩 사용하니 부작용이 나타날 확률도 줄어듭니다.

부작용이 생기지 않을 만큼의 용량으로 사용

다양한 이유로 생기는 증상을 해결하기 위해 오랜 기간 약을 써야 할 때는, 그 원인들을 해결할 수 있는 여러 약들을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을만한 적당한 용량으로 사용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장기 이식 후 투여하는 면역 억제제도 두세 가지를 함께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식 후에는 이식받은 장기에 대한 면역 반응이 일어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하는데, 면역 반응 또한 혈압이 높아질 때처럼 여러 단계의 영향을 받습니다. 면역 세포가 이식받은 장기를 인식하고, 그 주위에 많은 면역 세포가 모이고, 다양한 물질을 만드는 등 아주 많은 과정이 있죠. 한가지 약으로는 이 모든 과정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없습니다. 여러 단계를 막는 약을 함께 사용하면 다양한 면역 과정들을 차단할 수 있고, 각각의 약을 조금씩만 써도 되기 때문에 부작용을 줄일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당뇨, 고지혈증, 파킨슨병 등 장기간 약물 사용이 필요할 때 이런식으로 여러 약을 같이 투여합니다.

그런데 이 경우 문제가 있습니다. 질환은 하나인데 약은 여러 개라는 것입니다. 약 개수가 늘어나면 이 약은 하루에 한 번, 저 약은 하루에 두번 하는 식으로 복용 시간도 달라지고 한 번에 먹어야 할 약 개수도 늘어납니다. 이렇게 되면 환자분이 약 복용에 대해 어려움을 느끼게 되고, 약을 아예 먹지 않거나 개인 편의대로 여러 번 복용할 양을 한꺼번에 복용하기도 합니다. 처방과 다르게 약이 투여되는 것이죠.

아무리 좋은 약이 처방되더라도 환자가 제대로 복용하지 않는다면 소용없습니다. 그래서 최근 제약 회사에서는 여러 가지 약 성분을 한 알에 함께 넣은 복합제를 많이 내놓고 있습니다. 약 두세 알을 따로 챙기지 않고 한 알만 먹으면 되니 복용 부담이 훨씬 적습니다.

복합제의 용량과 효력

여러 가지 약 성분이 함께 들어간 복합제 이름에는 각 용량이 표시된 경우가 많습니다. 한 항고혈압 복합제 이름은 ‘○○ 5/100/12.5mg’인데요. 이건 첫 번째 성분 5mg과 두 번째 성분 100mg과 세 번째 성분 12.5mg을 한 알에 넣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두 번째 성분이 100mg이네요. 첫 번째 성분보다 20배나 많이 들어 있는데 이거 괜찮은 걸까요? 여러 가지 약을 같이 쓰면 하나만 쓰는 것보다 조금씩 쓸 수 있어서 부작용이 나타날 확률이 줄어든다고 설명드렸는데 두 번째 약은 왜 이렇게 많이 쓰는 걸까요?

이를 설명하려면 ‘효력’이라는 개념이 필요합니다. 영어로는 potency라고 하는데 이는 ‘약의 어떤 용량에서 나타나는 효과’를 말합니다. ‘가’약은 10을 썼을 때 혈압을 5만큼 낮췄는데 ‘나’약은 1만 써도 혈압을 5만큼 낮춘다고 가정해 봅니다. 이 경우 ‘가’약에 비해 ‘나’약은 적은 양을 써도 효과는 똑같기 때문에 ‘나’약이 ‘가’약보다 효력이 높다고 합니다. 이때 ‘가’약 10과 ‘나’약 1을 비교해서 ‘가’약을 너무 많이 썼다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겉보기엔 ‘가’약 용량이 10배 많지만 혈압은 ‘나’약 1을 썼을 때와 똑같이 떨어졌으니 ‘가’약 10과 ‘나’약 1은 같은 양입니다. 예를 들어 같은 무게의 짐을 성인은 한 명이 옮길 수 있는데, 어린이는 열 명이 힘을 합쳐야 옮길 수 있는 원리와 같습니다. 어린이 한 명과 성인 한 명이 낼 수 있는 힘의 크기는 다르니까요.

여기서 ‘가’약이 어린이, ‘나’약이 성인입니다. 어린이와 성인을 세는 단위는 ‘명’으로 같지만 한명당 낼 수 있는 힘의 크기는 다른 것처럼, 약도 ‘무게’라는 같은 단위로 나타내지만 무게당 낼 수 있는 효과가 다릅니다.

그리고 1을 썼을 때 약효가 나타나는 ‘나’약을 20만큼 쓰면 부작용이 나타난다고 가정해 볼게요. 이때 10은 써야 약효가 나타나는 ‘가’약은 20 정도 쓴다고 해서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가’약은 ‘나’약에 비해 약효를 볼 때까지 써야하는 양도, 부작용이 나타나기까지 써야 하는 양도 훨씬 많습니다. 따라서 ‘○○ 5/100/12.5mg’의 두 번째 약이 100mg이라고 해서 5mg만 쓰는 첫 번째 약의 20배나 된다고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정해진 용법과 용량 꼭 지키기

평소 약을 잘 안 챙겨 드시는 분이 ‘이것도 저것도 다 면역 억제제라는데 챙기기 어려워서 하나만 먹었다’고 말씀하시는 걸 들은 적 있습니다.

오랜 기간 치료를 지속하는 건 힘든 일입니다. 스스로 챙겨야 하는 약이 어려워지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통원 치료 중에는 누군가가 옆에서 계속 챙겨 줄 수 없습니다. 본인이 약을 잘 챙기는 게 중요하고, 그러려면 복용하는 약이 무엇인지, 왜 필요한지 알아야 합니다.

한 가지 질환에도 약을 여러 가지 쓰는 것은 효과는 높이고 부작용은 낮추기 위함입니다. 혼자 판단하여 약을 빼거나 몇 번의 분량을 한꺼번에 복용하지 마시고, 꼭 전문가와 상담해 필요한 약효를 다 챙기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