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 이야기

수창동의 사랑방이자
건강 상담실

편집실 사진 백기광, 윤선우 영상 김수현

대구 수창약국 이향욱 약사*

대구 중구의 1호 약국으로 1961년 개국한 수창약국은 북성로 공구골목의 터줏대감이다. 약대를 갓 졸업하고 약사로 첫발을 내디딘 이향욱 약사의 삶의 터전이자 인생이 녹아 있는 수창약국. 6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 자리에서 동네 사람들과 호흡하고 있다.

#대구 중구 1호 약국

대구 최초의 번화가로 성장하며 상권이 형성된 중구 북성로는 공구골목으로 유명하다. 6·25 전쟁 당시 미군 부대의 군수 물자와 폐공구를 수집하던 10여 명의 주민이 영업을 시작한 것이 기초가 되어 공구 상점이 하나둘 생겨났고, 그렇게 지금의 북성로 공구골목이 형성됐다. 이처럼 오랜 역사를 가진 골목 중간쯤 수창초등학교와 인접한 코너에 자리한 수창약국도 공구골목이 생겨나기 시작할 즈음 문을 열었다.

“학교 졸업과 동시에 1961년 6월 약사 먼허를 따고 그해 8월에 약국을 시작했어요. 이 자리가 초등학교 옆이니 주변에 문구점이 많았지요. 오래전부터 공구 가게가 모여 있는 동네였고, 지금도 변한 게 별로 없어요.”

동 이름도 수창동이고 위치도 수창초등학교 옆이라 약국 이름을 자연스럽게 수창약국으로 정했다. 1978년 지금의 자리에 건물을 짓고 1층에 재오픈하면서 단골이 늘어 그렇게 수창약국은 동네 주민들의 사랑방이자 건강 상담실로 자리 잡았다.

이향욱 약사가 약대를 지원한 건 의대에 진학한 두 살 터울 언니의 영향이 컸다. 경북 경주에서 태어나 경남여고를 졸업할 정도로 공부를 잘했던 이향욱 약사는 특히 수학과 과학을 잘했다고 한다.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에 다니던 언니처럼 장래 의사가 되고 싶어 서울대학교 치대에 원서를 냈지만 불합격했고, 2차인 성균관대 약대에 합격해 5회 졸업생이 됐다.

“서울에서 언니와 자취를 하면서 학교를 다녔어요. 서울 성북구 골짜기에 방을 얻어서 둘이 지냈죠. 학교 다닐 때는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재미있게 지냈습니다. 공부하는 것도 좋았고. 졸업하면 약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공부도 열심히 했죠.”

#오며 가며 들르는 동네 사랑방

졸업하고 대구에 자리를 잡은 언니를 따라 이향욱 약사도 대구로 내려왔다. 당시 대구에서 가장 큰 약국 운영을 맡아 하던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수창약국을 함께 이끌어 나갔다. 오랫동안 약국을 운영해 본 경험이 있던 남편은 수창약국 운영도 잘했다.

“주변이 공구 상가이다 보니 신경통 약과 화상약을 찾는 사람들이 있어서 이 두 가지 약을 많이 조제했어요. 한두 번 약을 지어 간 사람들로 부터 입소문이 나서 찾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또 남편이 주변에 아는 사람이 많다 보니 약국이 늘 사람들로 북적였지요. 그냥 지나가다 들르는 사람도 있었고, 아침저녁으로 심심하니 약국에 놀러 와서 이야기하며 시간 보내는 사람들도 있었고요. 그러면서 건강에 대한 정보도 주고받고, 약도 지어 가고 했지요.”

2007년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약국이 혼자만의 공간이 됐다는 이향욱 약사는 그때의 북적거리던 약국이 그립다고 한다.

#습관처럼 문 열고 사람들을 만나는 공간

“아침에 눈뜨면 습관처럼 약국 문을 열지요. 여기 앉아서 TV도 보고 라디오도 듣고 하다 보면 아는 사람도 왔다 갔다 하고 그렇게 하루가 지나갑니다. 하루라도 문을 안 열면 안 돼요. 동네 사람들도 나한테 무슨 일이 있나 궁금해하고요.”

매약 중심으로 판매하다 보니 이젠 약을 조제할 일이 거의 없다는 이향욱 약사는 그래도 약국 문을 닫은 적이 없다. 손때 묻은 약장과 약대 재학 시절 및 졸업 후 약사회 모임, 경남여고 동창회 등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사진 속 시간들을 추억하며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통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약을 주면 좋을지 생각할 때 가장 보람을 느끼지요. 몸이 아프면 정말 힘들잖아요. 그럴 때 내가 배운 지식을 활용해서 아픈 사람을 도와줄 수 있다는 점이 참 좋습니다. 우리 약국 약을 먹고 싹 나았다며 고맙다는 인사를 받을 때처럼 기분 좋은 순간도 없죠.”

약국을 언제까지 운영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이향욱 약사는 남편과 함께 운영하며 3남 1녀를 키워 낸 수창약국 문을 쉽게 닫을 수도 없다고 한다. 수창약국은 이향욱 약사에게 세상의 전부이자 삶의 터전이었기에 약국이 없는 삶은 생각해 본 적이 없지 않을까. 이향욱 약사가 교회와 동창회 모임에 꾸준히 나갈 수 있을 만큼의 건강을 유지하며 오래도록 수창약국의 문을 열기를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