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 이야기

이웃과 나누고
이웃을 보듬는 약국

편집실 사진 송인호 영상 김수현

인천 만화약국 박승면 약사*

아침 일찍 약국 문을 열고 진열장을 꼼꼼히 살핀다. 오며 가며 들르는 동네 주민들과 살가운 인사도 나눈다. 1963년 이 자리에서 약국을 시작한 박승면 약사는 지금까지 한곳에서 주민들의 든든한 이웃으로 남아 있다.

#“저번 그 약이랑 이것도 주세요.”

만화약국을 찾는 단골 손님들의 주문은 이처럼 간소하다. 몇십 년 지기 이웃이기에 어디가 안좋은지 무슨 약을 먹는지 말하지 않아도 박승면 약사가 알기 때문이다.

“왜 지팡이를 짚으셨어? 그러면 다리에 힘주기가 점점 힘들어져.”

약을 사러 온 주민에게 이처럼 건강을 염려하는 말을 인사말처럼 건네기도 한다.

경기도 이천이 고향인 박승면 약사는 이천농고를 졸업하고 중앙대 약대에 진학했다. 공부를 잘했던 박승면 약사는 ‘약대에 진학해 보라’는 화학 선생님의 말 한마디에 마음이 움직여 중앙대 약대에 지원했다. 학교를 졸업한 후 군대를 제대하고 바로 약국을 차렸다. 대학 동창 10여 명이 인천에서 약국을 시작하면서 박승면 약사도 자연스럽게 인천에 자리 잡게 됐고, 그렇게 시작한 약국이 어느덧 한자리에서 60년을 넘겼다.

“시작할 땐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이었지만 이제는 이 동네에 오래 산 분들과는 아주 오랜 친구 같습니다. 그분들을 위해서라도 약국 문을 닫으면 안 돼요. 힘닿는 데까지 약국을 끌고 가면서 함께해야겠지요.”

약국 주변의 어르신 중에는 혼자 살거나 생활이 넉넉지 않은 분들이 많다. 만화약국은 그런 분들을 챙겨주는 병원과 같은 곳이다. 아픈 곳이 있으면 약국에 들러 이야기하고 하소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아픈 곳이 나았다며 약국 문을 나선다.

#나눔을 실천하는 약국

만화약국은 주민들에게 아낌없이 베푸는 약국이기도 하다. 지난 겨울에는 20kg 쌀 300포대를 나눴고, 대한적십자사 희망풍차 나눔사업장으로 등록되어 2011년부터 꾸준히 나눔에 동참하고 있다. 희망풍차 나눔사업장 프로그램은 지역 사회의 어려운 이웃을 돕고자 사업장에서 적십자를 통해 정기 후원금을 납부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동네에는 어렵게 사는 분들이 많아요. 내 이웃이고 친구 같으니까 돕고 싶죠. 그분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없어요. 원래 나눔이라는 것이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이 더 행복한 일이잖아요.”

사소한 증상이라도 물어보면 귀찮아하지 않고 자상하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것만으로도 주민들에게는 든든한 이웃인데, 어려운 이웃을 위해 수년째 기꺼이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니. 만화약국은 숭의동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임에 틀림없다. 박승면 약사는 돕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실천으로 옮기고 함께 나누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을 같이 전했다.

#이제야 인생을 즐기고 싶다는 62년 차 약사

만화약국은 의약 분업 전에는 피부약으로 유명한 약국이었다. 박승면 약사가 약국을 개업한 후 따로 공부를 해 아토피 피부염과 습진에 잘 듣는 약을 짓기 시작한 것이 소문이 나 많은 환자가 찾곤 했다.

“우리 약국이 피부약을 잘 짓는다는 걸 알리기 위해 일일이 손으로 광고지를 만들어서 집집마다 돌렸어요. 그걸 보고 사람들이 약을 사 갔고, 진짜 잘 듣는다고 소문이 났는지 멀리서도 피부약을 지으러 왔죠. ”

그렇게 바쁘게 약국을 운영하며 아침 6시에 문을 열고 밤 11시에 닫는 일상을 이어 왔다는 박승면 약사. 지금은 영업시간을 전보다 줄이긴 했지만 평일이면 어김없이 약국 문을 열고 약국을 지킨다. 그래서 취미 생활도 제대로 못 해 봤다며 웃는 그다.

“사진을 배워 보고 싶기도 하고, 여행도 다니고 싶어요. 그동안 하고 싶어도 시간이 없어서 못해 본 일들을 좀 해 보고 싶어요. 배우는 걸 좋아하니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게 많거든요.”

그러려면 이제 약국을 그만해야겠다면서도 약국을 습관처럼 들르는 주민들을 생각하면 이것도 쉽지 않다고 웃는다. 기댈 곳 없는 주민들이 편안하게 약을 사고 이야기 동무를 찾을 때 이웃인 만화약국을 먼저 떠올릴 수 있도록 하자는 게 지금까지 약국 문을 열어 둔 이유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