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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한테 맞춰 줄게!

초개인화 솔루션

개인의 생활 습관이나 성향에 따라 각기 다른 소비 행태를 겨냥하여 정밀하게 고안된 ‘초개인화(Hyper-personalization) 솔루션’이 최근 트렌드로 급부상했다. 의료, 쇼핑, 자산 관리, 교육 분야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초개인화 마케팅이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

구승준 칼럼니스트·번역가

직장인 김예림(26세) 씨는 어느 날 어머니의 쇼핑몰 장바구니를 보고 놀랐다. 자신과 같은 운동화가 담겨 있었는데 구매가가 달랐던 것. 어머니가 살 수 있는 가격은 4만 8,000원인 데 반해 김예림 씨는 5만 2,000원이었다. 해당 쇼핑몰에서는 유사한 물건을 꾸준히 구매하는 김예림 씨에게는 정가를 받지만, 좀처럼 물건을 구입하지 않는 어머니에게는 할인 가격을 제시하는 ‘개인 맞춤형 변동 가격(personalized dynamic pricing)’이라는 정책을 쓰고 있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당신의 취향과 일치하는 상품이 할인 중입니다’, ‘당신이 찾던 상품입니다’와 유사한 알림을 받은 적이 있을 것이다. 이렇듯 이커머스에서는 검색 성향, 장바구니, 쇼핑 빈도를 모두 데이터베이스화하여 당신의 지갑을 노리고 있다.

초개인화 솔루션의 잠재적 가능성을 가장 많이 품고 있는 분야는 의료계다. 지구상에 유전자가 같은 사람은 없고 체중, 키, 혈압, 맥박, 현재 병력, 잠재적 병력도 각자 다르기 때문이다. 스마트 기기와 센서를 통해 자신의 생활 습관을 기록하고 관리하는 ‘자가 건강 측정 데이터’를 기반으로 적절한 처방이나 치료를 제공하는 서비스가 현재 시행되고 있으며 점차 확대될 전망이다.

이를테면 혈당 관리 서비스 ‘파스타’를 통해 스스로 혈당을 측정, 기록하면 생활 습관 분석을 통해 자신에게 맞는 식단과 처방을 추천받을 수 있다. ‘필라이즈’는 건강 기록, 검진 기록 등 개인의 건강 데이터를 기반으로 영양제, 식단 등을 통합적으로 분석, 추천, 관리해 주는 건강 관리 앱이다. 어떤 영양제가 좋은지 추천해 줄 뿐 아니라 적정 섭취 시간을 알람으로 알려 준다. 일상 전반에도 초개인화 솔루션이 스며들고 있다. 여행을 떠났을 때 박물관에 들르는 사람도 있고 특정 카페나 식당 등을 찾아가는 사람도 있다. 기존의 여행 앱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분야별 명소만을 소개했다. 그러나 최근 ‘트리플’과 같은 여행 앱을 사용하면 빅 데이터와 AI를 기반으로 자신만의 취향대로 일정을 짤 수 있다.

델타항공은 고객의 니즈를 미리 파악하고 맞춤화된 편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디지털 콘시어지 플랫폼으로 업그레이드 중이다. 델타항공의 평행 현실스크린은 여러 사람이 하나의 공항 안내 스크린을 보더라도 고객마다 필요한 정보를 다른 언어로 제공한다.

초개인화 솔루션은 매일의 소확행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스타벅스 사이렌 오더를 통해 자신의 취향에 맞추어 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면 그 구성이 무려 2만 가지 이상이 된다. 핫(Hot)과 아이스(Ice) 중 하나를 고른 다음, 컵 종류 세 가지, 사이즈 네 가지 중 하나를 고른다. 이어서 샷, 시럽, 물양, 얼음양, 휘핑크림 등에서 취향껏 선택하면 자신에게 딱 맞는 커피를 즐길 수 있다.

더 촘촘해진 초세분화 마케팅

물론 예전에도 개인화된 마케팅은 있었다. 인구통계학적 자료나 기존 상품 구입 데이터를 기반으로 특정 타깃층을 겨냥하여 상품을 추천하거나 예전에 구입했던 물건을 다시 추천하는 식이었다. 이제는 그물이 좀 더 촘촘해지고 있다. 초개인화는 인구통계학적 자료뿐 아니라 검색 패턴, 소비 행태, 구매 상품에 대한 반응, 장바구니 내역과 같은 구체적인 행동 패턴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하여 이를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미래 행동까지 예측한다. 아직 실현되지 않은 소비자의 욕구까지도 내다보는 것이다.

오래전에는 인구통계학적 자료로 세부 타깃을 설정하면 대체로 소비 행태가 비슷했다. 그러나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다. ‘서울 강남구에 사는 연 수입 5,000만 원의 31세 여성’이라는 분명한 타깃을 설정해도 소비 행태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일 수 있다. 1년 내내 치마를 즐겨 입는 여성도 있고, 치마를 거의 입지 않는 여성도 있다. 그루밍에 관심이 많아 얼굴에 비비크림을, 입술에 틴트밤을 바르는 30대 남성이 있는가 하면, 스킨로션조차 사용하지 않는 남성도 있다.

초개인화된 우리 사회

초개인화 솔루션이 주요 마케팅 전략으로 자리 잡고 있을 뿐 아니라 기업의 사활을 건 필수 실행 요건이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첫째는 빅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하드웨어 및 AI 기술의 발전이다. 앞서 언급한 쇼핑몰 사례를 다시 살펴보자. 해당 쇼핑몰은 김예림 씨의 소비 패턴으로는 가격을 할인하지 않더라도 운동화를 구매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분석했지만 어머니는 운동화의 가격을 매우 꼼꼼하게 따지므로 구매 확률이 낮다고 분석했다. 수만에서 수백만 고객을 보유한 쇼핑몰에서 고객의 개인 성향과 구매 확률을 수작업으로 분석하려면 수천 명의 직원이 날마다 야근을 해도 모자랄 것이며, 설령 할 수 있다 해도 정확도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 사회가 이미 초개인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매스미디어의 영향력이 약해져 집단의 취향보다는 개인의 취향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MZ세대는 이전 세대와 달리 TV를 몇 시간이고 보지 않는다. 드라마는 유튜브에 올려진 요약본을 보거나 본방 대신 VOD로 1.2배속으로 본다. 그것도 지루하여 30초짜리 쇼츠 영상이나 숏폼 영상을 본다. 영상 플랫폼에서는 소비자의 취향을 고려하여 초개인화된 추천 영상을 제공한다. 만화책 대신 10분 만에 한 편을 볼 수 있는 웹툰의 성행도 이런 현상의 한가지로 볼 수 있다. 개인의 취향은 점점 세분화되고 있으며 각자가 추구하는 가치도 점점 파편화되고 있다. 일부 사회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두고 ‘나노 사회(Nano society)’라고 표현한다.

같은 맥락에서 최근의 소비자들은 ‘가치 소비’를 하는 경향이 있다. 가치 소비란 물건이나 재화를 소비하여 자신만의 가치를 충족하는 소비 행위를 말한다. 안으로는 자기 표현의 욕구를 충족하고 밖으로는 스스로의 이미지를 드러내려고 하는 것이다. ‘남의 눈치’보다는 ‘나의 가치’가 우선이다.

최근 나(Me)와 이코노미(Economy)를 결합한 미코노미(Meconomy)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대중(Mass)보다 개인이 더 중요한 시대에 초개인화 마케팅은 거스를 수 없는 물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