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 이야기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반갑게 맞아 주는 사람

편집실 사진 백기광, 송인호 영상 김수현

광주 대동약국 홍원표 약사*

주점이 많았던 동네가 인쇄 타운이 되는 모습을 모두 지켜보며 50년의 시간 동안 한자리에서 약국 불을 밝혔다. 주점 영업시간에 맞춰 늦게까지 문을 열어 두었던 대동약국의 홍원표 약사는 지금도 급히 달려올 누군가를 위해 새벽까지 약국 불을 밝혀 두었다가 환한 미소로 다정히 맞아 준다.

# 자립하기 위해 일찍부터 정한 길

1974년에 문을 열었으니 올해로 딱 50년째다. 광주 동구의 대동약국 홍원표 약사는 대학교 졸업 후 이 건물에서 약국을 처음 열어 같은 건물에서 계속 운영해 왔다. 이전에도 같은 자리에 약국이 있었는데, 개업을 준비하던 차에 마침 그 약사분이 나이가 들어 그만두신다고 하여 바로 들어와 시작할 수 있었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셨던 홍원표 약사는 빨리 자립하겠다는 일념으로 고등학생 때부터 약대에 진학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공부했다. 그 당시 약사는 최고 엘리트로 여겨졌다. 약국이 병원보다도 우선이었던 시절. 제약 회사 직원도 회사 가방을 들고 식당에 방문하면 대번에 알아봐 줄 정도였다. 병원이 지금보다 적고 문턱이 높아서 건강 문제가 생기면 상대적으로 문턱이 낮은 약국을 찾았기 때문이다. 법이 정비되기 전에는 약국에서 환자를 치료하기도 했다. 이렇듯 약국이 병원 역할까지 하며 시민들의 건강을 책임졌다.

# 마음 편히 찾아가는 건강 지킴이

당시 약국의 높은 위상에도 홍원표 약사는 약국을 찾아오는 손님과 동네 사람에게 늘 부드럽고 친절하게 대했다. 한자리에서 50년을 이어 온 비결이다.

“제 태생이 누구에게나 친절합니다. 겸손을 우선으로 손님을 맞이해서 그런지 나름대로 우리 약국 평이 좋았어요. 또 동네 분들과 전부 가족 같은 분위기로 함께 살았기 때문에 의약 분업이 된 뒤에도 병원에 가기보다 저희 약국에 먼저 오셨어요. 저도 그렇게 가깝게 지내다 보니 떠날 수가 없어서 이렇게 그대로 있습니다.”

한동네에서 가까이 지내며 오랜 시간 지켜보니 누가 자주 아픈 곳이 어디인지, 무슨 약을 먹으면 효과가 있는지 자연스레 알게 됐다. 동네 이웃들이 병원에 가기 전에 먼저 자신에 대해 잘 아는 대동약국을 찾는 이유다.

“저 사람은 무슨 약을 먹으면 안 되겠다, 무슨 약을 먹으면 부작용 없이 금세 낫더라 하는 걸 알게 되죠. 시간이 흐르면서 돌아가신 분도 많고 이사 간 사람도 많지만 새로운 분이 와도 금방 가까워져요.”

한자리에서 오래 약국을 운영하니 동네 터줏대감이 되어 각종 자치 모임에도 참석한다. 자율방범이나 자치 위원회, 약사회 모임 등 참여하는 모임만 열 개가 넘는다고. 봉사와 후원을 많이 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단 얘기를 꺼내자, 이런 모임 활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사회 기여 활동도 하고 후원도 하게 된다고 말하며 웃는다. 한쪽 벽면을 다 채울 만큼 가득한 감사패는 겸손한 그의 말처럼 약국 안쪽 깊숙한 공간에 자리한다.

# 모든 것이 고마운 일

시민들의 건강을 위해 약국을 운영해 온 약사로서, 동시에 한 지역에서 오래 살아온 시민으로서 경험과 지식을 나누며 지역 사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그의 나이는 75세다. 건강 비결은 마음을 편하게 먹고 늘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지금까지 건강하고 아무 탈 없이 이렇게 무난하게 산 것이 참 감사한 일이죠. 오늘 이렇게 오신 것도 얼마나 감사합니까. 감사하게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요. 손해 보면 얼마나 손해 보겠어요. 건강하니까 계속 일도 하고요. 심야약국 봉사료가 나오는 것도 감사하죠. 큰돈은 아니지만 그래도 봉사한 만큼은 돼요. 전에는 새벽 한 시까지 하다가 이제 두 시까지 하는데, 오는 손님마다 저에게 고맙다고 해요. 그 말만 들어도 감사하죠.”

# 급히 찾을 누군가를 위한 새벽의 온기

대동약국은 새벽까지 문을 여는 광주 동구의 공공 심야약국이다. 심야약국의 필요성이 사회적으로 논의되기 전부터 홍원표 약사는 새벽 늦게까지 약국을 운영했다. 동네가 나중엔 인쇄 타운이 되었지만, 처음에는 주점이 많았던 거리였기 때문이다. 늦은 밤에도 거리에 사람이 많았고, 주점 손님이나 직원이 밤늦게 급히 약을 찾는 경우도 많았다. 주점 영업시간에 맞춰 약국도 늦게까지 열어 두었던 것이 지금의 심야약국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됐다.

새벽에 약국을 찾는 사람들은 날이 밝기까지 기다리기 어려울 정도로 급한 경우라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도 많다. 먼 시골에서도 많이 찾아오고, 오는 사람마다 약국 문을 열어 줘서 고맙다고 말한다. 홍원표 약사는 고맙다는 말만 들어도 늦은 시간까지 일하는 피로가 씻기고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약국을 운영하는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같은 건물에 있는 병원이 문을 닫아도 약국은 한 시간 정도 더 열어 두면 좋겠습니다. 봉사나 후원은 돈을 쓰고 대단한 일을 하는 것보다 마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너그러운 마음으로 친절하게 손님을 대하다 보면 나중에 그 약사는 참 다정했다고 기억해 줄 거라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