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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뇌하수체 연구의
최고 권위자

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이은직 교수

편집실 사진 송인호

뇌하수체는 1g도 되지 않는 작은 기관이지만, 성장, 생식, 생명유지에 필요한 호르몬을 분비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이은직 교수가 우리 몸 전체를 조절하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도 같다는 표현을 하는 이유다. 너무 많거나 혹은 너무 조금 분비되어도 안 되는 호르몬의 다이내믹한 조절작용에 대한 궁금증으로 연구를 시작했고, 질환의 기전을 밝히고, 치료제 개발에 도움이 되고자 동물 모델을 제작, 이를 활용한 다양한 후속연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후배연구자들에게 길을 열어주고 있다.

이은직 교수는 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과장, 내분비연구소 연구소장, 뇌하수체종양센터 센터장을 역임했고, 현재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학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국내에서 뇌하수체와 관련한 연구는 이은직 교수의 등장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뇌하수체는 우리 몸의 다양한 호르몬 분비를 조절하는 지휘자 역할을 담당하는 중요한 장기이다. 그럼에도 불모지라 해도 좋을 만큼 관련 연구가 본문으로 전무했던 시절이 있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먼저 걸어가야 하는 두려움을 오로지 연구하는 즐거움으로 치환했다.

뇌하수체는 내분비 호르몬의 꽃

90년대 후반 당시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에 근무하던 이은직 교수에게 한 모녀가 찾아왔다. 딸인 18세 여학생 환자에게 생리가 멈춘 상황에서 유즙이 분비되는 증상이 지속되면서 병원을 찾았고, 검사 결과 뇌하수체에 종양이 생겨 프로락틴 호르몬 수치가 너무 올라간 것이 원인이었다. 다행히 약물 치료로 정상 수치를 되찾았고, 그때의 고마움으로 지금도 안부 인사를 전하는 등 인연이 이어지고 있다.

또 한번은 중년 부부가 찾아왔는데 이은직 교수는 갑상선 결절 증상을 보였던 부인보다 따라온 남편이 뇌하수체 기능 저하증 환자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남성의 경우 뇌하수체 기능 저하증으로 갑상선 호르몬, 부신 호르몬, 남성 호르몬 등이 부족해지면 얼굴에 바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덕분에 치료를 잘 받고 건강하게 회복한 모습으로 감사 인사를 전하던 환자와의 일화가 이은직 교수에게는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그는 의사의 가장 큰 기쁨은 제대로 된 진단과 치료가 잘되었을 때 느끼며, 환자가 전보다 더 나은 삶을 살게 되었을 때 제일 행복하다고 말한다.

“뇌하수체는 ‘내분비 호르몬의 꽃’이라고 생각합니다. 뇌하수체는 갑상선과 부신을 조절하고, 남성의 경우 고환을 조절해 정자를 형성하고 남성 호르몬을 분비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여성의 경우도 난소를 조절해 배란하고, 아기를 갖게 하며 여성 호르몬이 원활하게 나오도록 관장하죠. 이처럼 모든 기관을 조절해 주는 뇌하수체를 접하고 보니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호기심이 키워 준 연구에 대한 열정

의과 대학시절, 시험을 앞둔 학생들 사이에는 선배들로부터 전수받는 소위 ‘족보’가 성행했다. 이은직 교수는 족보를 만드는 학생이었다. 요즘으로 치자면 교과서 위주로 공부하는 스타일이었던 그는 방대한 내과 서적을 섹션별로 나누어 밑줄 그어 가며 공부했고, 그렇게 정리된 노트는 후배들 사이에 가장 인기 있는 족보가 되었다.

“병리, 생태, 생리학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이건 왜 이렇지?’라는 호기심이 제 안에서 생겨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지금까지도 논문을 쓰고 연구를 하는 일이 재미있다고 생각되는 이유도 호기심이 많고 궁금증을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제 성향과 잘 맞지 않나 싶습니다.”

이은직 교수가 뇌하수체 질환 환자에 대한 치료를 시작한 1990년대까지만 해도 뇌하수체는 내분비내과 중에서도 가장 어렵고, 관련 연구도 미비한 상황이었다. 여기에 더해 희귀 질환이어서 환자 케이스가 많지 않은 것도 어려움을 더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참고할 레퍼런스가 없으니 자신이 직접 만들어야겠다는 판단으로 이은직 교수는 미국 연수 길에 올랐고, 노스웨스턴 대학교(Northwestern University)에서 교수로 재직하는 10년간 활발한 연구 활동을 펼치며 우수한 논문들을 발표했다. 족보를 만들던 대학생이 세계 유수의 학술지에 우수 논문을 게재하는 1저자가 된 것이다.

“내분비 질환은 오랜 기간 약제 투여가 필요하다는 특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환자의 순응도가 높고 부작용이 적은 약제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임상교수 혼자의 힘으로는 신약 개발하는 일이 무척 어렵습니다. 의과대학, 병원, 연구기관, 산업체 등 이른바 학·병·연·산이 네트워크를 맺어 협업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연구란 궁금증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즐거움

2006년 귀국 후부터 이은직 교수는 연세대학교 신경외과와 팀을 이루어 국내 최초로 뇌하수체 질환 관련 다학제 진료 및 공동 연구를 시작했다. 내분비대사-신경외과-영상의학과-병리학과로 구성된 세브란스뇌하수체종양센터는 국내 최대의 뇌하수체 종양 환자 코호트를 구축하고 있으며, 다양한 임상 연구와 중개 연구를 통해 뇌하수체 종양 및 기능 이상 환자의 진단과 치료법 개선에 매진하고 있다.

희귀난치성 질환 연구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관련 질환의 동물 모델을 제작해 정확한 병인을 찾아내고 이를 통해 신약 타깃을 발굴하는 일이다. 이은직 교수는 말단 비대증에 대한 동물 모델 대상 연구를 진행, 세계 최초로 제작에 성공했고, 여러 건의 특허와 대기업 제약 회사 기술 이전, 국가신약개발사업 수주 등의 성과를 거두며 현재 말단 비대증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을 위한 치료제 개발을 진행 중이다.

“연구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한테 ‘연구가 뭐라고 생각하느냐?’라고 물어봅니다. 저 자신에게 같은 질문을 한다면 연구라고 하는 것은 그냥 궁금증을 해결하는 일이라는 답을 하고 싶습니다. 의사가 환자를 보고, 질병을 연구하다 보면 호기심이 계속 생기게 되는데 그 궁금증을 의학적으로, 의과학적으로 풀어내는 것 그것이 연구라고 생각합니다.”

궁금증을 해결했을 때의 즐거움, 그것이 없다면 연구를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이은직 교수. 그는 앞으로 맞이할 미래 의학의 핵심은 기초 의학과 중개 의학 연구에 전문성을 갖춘 의사과학자가 될 것이라 말한다. 우수한 의사과학자를 양성해 노벨상 하나쯤은 보유한 나라가 되는 모습이 보는 것이 소원이라 덧붙이며 환한 웃음을 짓는다.

건강을 위해 지키는 나의 루틴

명상

기독교인으로서 성경책을 읽거나 그 말씀을 마음속에 담고 명상하는 시간이 제일 편하고 좋습니다. 마음의 안식을 얻는 일이 큰 힘이 되고, 이를 통해 재충전을 하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