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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따라 살래!
디토 소비

자신과 취향이 같은 사람을 찾아 비슷한 소비를 따라 하는 현상인 디토 소비가 더 세분화되며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디토 소비는 뭔가 놓쳤을지도 모르는 두려움과 덜 나은 선택을 했을지도 모르는 두려움을 최소화하는 소비 형태로 볼 수 있다.

구승준 칼럼니스트·번역가

14세기 고려 시대 원나라에 공녀로 끌려갔지만 황후에 오른 기황후는 용모가 아름답고 학식이 뛰어났다. 원나라 사람들은 그녀를 흠모해 옷을 따라지어 입기 시작했는데, 이를 ‘고려양’이라고 했다. 다른 고려 풍습도 따라 해 오늘날 몽골에서는 아직도 ‘고려만두’, ‘고려병’ 등의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1960년대 후반에는 미국에서 활동하다가 귀국한 가수 윤복희의 미니스커트를 따라 입는 여성들이 많아졌다. 경찰이 대나무 자로 무릎 위 15cm가 맞는지 재고 다니며, 만약 치마가 기준보다 짧으면 이틀간 구류 처분을 내렸지만 그럼에도 열풍은 계속됐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스타를 닮으려 애썼다. 스타가 입는 옷이나 장신구는 금세 완판되고 품절되기도 한다. 지금도 그런 경향은 존재하지만 양상이 다르다. 특히 Z세대에게서 두드러지는 ‘디토 소비’에서 그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내가 좋아하고 나와 맞는 소비

‘디토(Ditto)’란 ‘나도’ 또는 ‘이하동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나도 따라 살래’ 하고 구매하는 소비 성향을 ‘디토 소비’라고 한다. 일반적인 소비 과정에서 무언가를 사려고 하면, 많은 상품 중 몇 가지 구매 후보를 추리고, 대안은 어떤 것인지 꼼꼼히 따진다. 그러나 디토식 의사결정은 누군가 사용하던, 혹은 어떤 콘텐츠에 나왔던 제품을 따라서 구매한다. 그 ‘누군가’는 가장 유명한 사람이 아니라 나의 가치관이나 심미안과 가장 일치하는 사람 혹은 콘텐츠여야 한다.

이를테면 유튜브 뷰티 채널인 ‘포니 신드롬(Pony Syndrome)’ 채널은 구독자가 약 600만 명에 이르고 누적 조회수가 3억 5,000만 뷰에 이른다. 패션 채널인 ‘표은지’ 채널이나 ‘주우재’ 채널의 영향력도 막강하다. 예전에는 ‘가장 유명한 인기 스타’를 추종했다면, 지금은 가장 유명하지는 않더라도 나와 맞을 법한 사람의 스타일을 소비한다.

미국 Z세대가 가장 받고 싶어 하는 선물 중 하나가 스탠리(Stanley) 텀블러다. 실제로 도심을 지나다니면 스타일리시한 여성들은 거의 들고 다닌다. 이 제품은 몇 년 전 단종 위기를 맞았으나 2023년 매출은 7억5,000만 달러(9,980억 원)에 달했다. 이유는 인플루언서들이 앞다투어 SNS에 자신이 사용하는 텀블러 영상을 올려서다. 스탠리 텀블러의 해시태그가 달린 틱톡 조회수가 이미 5억 뷰를 넘었다.

디토 소비는 자신에게 영향을 주는 사람이 쓰는 제품을 소비하기도 하지만, 드라마나 영화, 웹툰 등 콘텐츠의 분위기를 따르기도 한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 나오는 자연주의 성향의 인테리어를 꾸미기도 하고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레트로 감성을 추종하기도 한다. 웹툰의 화장법이 인기를 끌고 있다. 콘텐츠에 나오는 여행지와 상품을 결합한 세트 제팅(setjetting)도 인기를 끌고 있다.

커머스 디토의 영역도 확대 추세

디토 소비의 다른 유형으로는 ‘커머스 디토’도 있다. 디자이너 브랜드의 인테리어 소품을 좋아한다면 ‘29CM’에서 쇼핑을 하고, 시크하고 트렌디한 스타일의 패션을 좋아한다면 ‘무신사’에서 옷을 구입한다. 최근에는 라이브 커머스에서 인플루언서들이 소비자와 소통하면서 라이브 방송을 하고 있다.

디토 소비는 특히 Z세대가 선호한다.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Z세대(generation Z)는 스마트폰으로 드라마를 본다. 이들은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디지털 원주민)’다. 스마트폰을 일찌감치 사용했으며, 구글보다 틱톡이나 유튜브가 편하다. 인터넷 신문보다는 SNS로 뉴스를 확인한다.

Z세대가 디토 소비를 추구하는 이유는 ‘분초사회(Time-Efficient Society)’와도 관련이 깊다. Z세대는 할 일이 너무 많다. 볼 것도, 먹을 것도, 갈 곳도 너무 많다. 넷플릭스의 12부작 드라마 시리즈 하나만 보려고 해도 대략 12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볼만한 드라마 시리즈는 이미 수백 개며 날마다 신작이 업데이트되고 있다. 성수동 ‘포인트오브뷰’에 나온 신상이 어떤지도 궁금하다. ‘마츠다 부장’이 알려준 오사카의 맛집도 가 보고싶다.

소유가 아닌 경험 경제로의 전환

패러다임이 소유 경제에서 경험 경제로 바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시간은 늘 부족하다. 경험해야 할 것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반차가 아니라 반반차, 반반반차를 도입하는 회사들도 늘어나고 있다. 가성비보다는 시성비(시간+가성비)가 더 중요하다. 네이버 쇼핑이나 쿠팡에서 물건을 하나 검색해도 수백 개에서 수천 개의 상품이 나온다. 하나씩 클릭하여 장단점을 살펴보려니 아찔하다. 나의 취향에 맞으면서도 트렌드를 잘 따라가는 쇼핑을 하기 쉽지 않은 이유다.

미국의 벤처 투자자이자 작가인 패트릭 맥기니스는 자신의 저서 『포모 사피엔스(FOMO Sapiens)』에서 ‘내가 뭔가를 놓쳤을지도 모르는 두려움(FOMO, ‘Fear of Missing Out’)’과 ‘덜 나은 선택을 했을지도 모르는 두려움(FOBO, ‘Fear of Better Option’)’을 이야기한다. 이런 맥락에서 노력은 적게 하면서 좋은 결과를 갖고 싶으면, 누군가의 선택을 따라 하면 된다.

그러나 Z세대는 스타의 인기가 아무리 높아도 나의 심미관이나 가치관과 맞지 않으면 그 스타일을 추종하지 않는다. 지하철을 탔는데 나와 똑같은 옷과 신발을 신은 사람을 마주치는 건 끔찍한 일이다. 꾸민 듯 안 꾸민 ‘꾸안꾸’가 나에게 맞지 않다면 그동안 눈여겨보았던 ‘꾸꾸꾸’ 스타일의 ‘셀럽’을 따라 한다.

디토 소비는 확실히 ‘시성비’가 좋은 선택이긴 하지만 우려할 점도 있다. 디토 소비를 너무 많이 하면 다른 사람들의 소비 패턴을 따라 하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취향이나 심미관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또한 비합리적인 소비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뭐든지 과유불급이다. 디토 소비를 하려고 해도 똑똑하게 해야 한다.

디토 소비 트렌드로 인해 기업에서도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물건만 좋으면 알아서 팔릴 것이라는 생각은 오산이다. 상품의 질이 좋아야 할 뿐 아니라 기업과 브랜드의 철학에 대해서도 많은 고려를 해야 한다. 상품과 ‘분위기’까지 함께 팔아야 하는 것이다. 또한 소비자들과 어떻게 소통할지에 대한 숙제도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