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갱신, 순차공개
가격책정 등
다크 패턴에 속지 않으려면
1개월 무료 체험을 하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정기권 구매가 이루어진 걸 인지하고
해지를 위해 사이트를 샅샅이 뒤져도 해지 버튼을 찾지 못한 경험이 있다면, 다크 패턴에 빠진 것이다.
낱개 가격보다 더 비싼 가격에 ‘1+1’이라며 눈속임을 하고, 거짓된 이용 후기를 통해 소비자의 선택을 유도하기도 한다.
다크 패턴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대처 방법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자.
글 구승준 칼럼니스트·번역가
기업은 상품이나 서비스를 팔아야 생존한다. 품질이 훌륭하고 가격이 싸면 날개 돋친 듯 팔리지만, 좋은 품질의 제품을 생산하는 데 들어간 비용을 생각하면 가격을 마냥 싸게 책정할 수만은 없다. 품질을 높이려면 원자재 비용도 제품 개발비도 더 들기 때문이다. 디자인이나 포장, 유통 방법 등 가격 상승에 관련된 여러 요인도 고려해야 한다. 그런데 그 어려운 숙제를 풀어 가격 경쟁력이 있도록 만들어 놓아도 곧 무한 경쟁에 빠지게 된다. 다른 업체도 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기업은 다양한 ‘넛지 마케팅’을 한다. ‘넛지(Nudge)’란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의 뜻으로 소비자의 행동을 특별한 방향으로 유인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백화점의 엘리베이터는 고객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있다. 중앙의 에스컬레이터를 통해 매장으로 고객을 유인하여 상품에 시선을 더 붙들어 두려는 ‘넛지 전략’의 일환이다.
그런데 언뜻 넛지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소비자를 기만하는 수법이 있다. 바로 ‘다크 패턴(Dark Patterns)’이다. 이는 ‘소비자의 착각, 실수, 비합리적 지출을 유도할 의도로 설계된 온라인 화면 배치(인터페이스)’를 말한다. 이 용어는 2010년 한 디자이너가 정립한 개념인데, 우리말로는 ‘눈속임 설계’라고도 한다. 다크 패턴은 웹사이트나 애플리케이션에서 의도적으로 사용자의 혼란을 유발하거나, 눈에 잘 띄지 않는 방식으로 특정 행동을 유도하여 기업에는 이득을 주는 반면 소비자에게는 손해를 끼친다. 넛지는 소비자의 관심을 유도하는 마케팅 전략이지만 다크 패턴은 소비자를 속이는 것이 목적이다. 정보를 제한적으로 제공하거나 숨겨, 소비자가 다른 선택을 할 수 없게끔 한다.
방법도 교묘한 다크 패턴
다크 패턴의 합의된 분류 체계는 없지만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다크 패턴의 유형을 크게 편취형(3개 행위), 오도형(7개 행위), 방해형(4개 행위), 압박형(5개 행위)의 4개 범주로 나누고 이를 다시 19개의 세부 항목으로 분류했다.
편취형 상술의 가장 대표적인 예는 ‘숨은 갱신형’이다. 무료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던 중 일정 기간이 지나 유료로 전환되는 경우 기업은 소비자에게 이를 반드시 고지해야 하지만, ‘구렁이 담 넘어가듯’ 소비자의 지갑에서 돈을 빼 가는 것이다.
‘순차공개 가격책정’은 첫 화면에서 소비자가 지급해야 할 최종 금액을 표시하지 않고 순차적으로 공개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온라인 쇼핑 사이트에서 평균 단가가 대략 6만 원인 상품을 3만 원에 파는 곳을 찾아 결제를 누르는 순간 배송비가 4만 원인 것을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 소비자는 처음에 표시된 가격을 믿고 구매를 진행하다가 결제 직전에야 배보다 배꼽이 큰 것을 알게 된다. 이외에도 결제 직전에 세금, 배송비, 추가 수수료 등을 붙인다.
오도형 다크 패턴에는 7개 행위가 있는데, 대표적인 것은 ‘거짓 할인’ ‘거짓 추천’ ‘위장 광고’ 등이다. 거짓 할인이란 실제로는 원래 상품의 가격과 같거나 오히려 더 높은데도 할인을 한다고 거짓으로 광고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1+1 할인’으로 2만 원에 상품을 걸어 놓았지만 실제로는 한 개에 9,000원짜리 상품인 경우다. ‘거짓 추천’은 유리한 이용 후기를 거짓으로 작성하여 게재하고, 불리한 이용 후기는 삭제해 버리는 행위다. ‘위장 광고’는 광고를 하면서도 마치 광고가 아닌 콘텐츠인 것처럼 꾸며 소비자를 속이는 행위를 말한다.
방해형 다크 패턴은 중요한 정보를 누락하거나 상품의 포장이나 묶음 단위를 바꿔 가격 비교를 할 수 없도록 방해하는 행위를 말한다. 소비자 입장에서 가장 황당한 경험은 구독이나 멤버십 해지를 방해하는 행위일 터이다. 어떤 온라인 쇼핑몰은 1개월 무료 체험을 한 후 해지할 수 있다고 광고한다. 가입은 버튼 하나만 누르면 된다. 그런데 멤버십 해지를 위해서는 숨겨져 있는 해지 버튼을 찾아야 하며, 이것을 눌러도 다시 다른 페이지로 연결된다. 그리고 또 다른 페이지가 이어진다. 가입은 너무 쉽지만 해지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공부를 해야 할 정도로 어렵다.
꼼꼼하고 현명한 소비 필요
다크 패턴은 소비자의 권리를 침해하고 투명성과 공정성을 해치는 행위이다. 기업의 단기적인 이익을 위해 소비자를 의도적으로 속이는 비윤리적인 전략이다. 장기적으로는 소비자의 신뢰가 떨어지고, 기업의 이미지에 큰 손상을 줄 수 있다. 그런 이유로 EU와 미국에서는 일찌감치 다크 패턴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이를 사용하는 기업에 강력한 제재를 가하고 있다. EU와 미국에서는 이미 2017년, 2019년 각각 다크 패턴 금지법안이 발의되었고 지금도 다양한 후속 조치가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올해 1월 다크 패턴을 규제하는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전자상거래법)」이 국회를 통과했으며, 다크 패턴에 대한 몇 개의 법률 개정안이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그러나 통과된 법안에서 규제하는 다크 패턴은 ‘숨은 갱신’ ‘순차공개 가격책정’ ‘특정옵션의 사전 선택’ ‘잘못된 계층구조’ ‘취소·탈퇴 등의 방해’ ‘반복간섭’ 등 6개에 불과하다. 참고로 2023년 11월 한국소비자원의 발표에 따르면 국내외 쇼핑몰 웹 사이트와 모바일 앱 76개의 다크 패턴 사용 실태 조사 결과 다크 패턴은 총 429개였으며, 평균 5.6개의 다크 패턴을 사용했다. 공정위는 19개의 세부 항목 중 13개 유형을 소비자 피해를 유발할 우려가 큰 유형으로 제시한 바 있다. 또한 통과된 법안에 따르면 금지의무 위반 시 기업이 받는 불이익은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에 불과해 실제 효력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무엇보다 법안이 아무리 강력해지더라도 보다 고도화된 심리학 기법을 사용하여 소비자를 낚으려고 하는 기업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소비자로서 다크 패턴을 피하려면 더 꼼꼼해지고 현명해져야 한다. 우선 상품 설명 페이지를 꼼꼼히 읽어 봐야 할 것이다. 다크 패턴을 사용하는 기업은 법적 책임을 피하기 위해 소비자에게 중요한 정보를 반드시 고지한다. 그러나 잘 보이지 않는 디자인을 사용하거나 눈에 띄지 않는 위치에 그 정보를 배치하곤 한다. 충동구매를 하지 말고 상품 설명 페이지를 구석구석 잘 읽어 본다면 다크 패턴에 당하지 않을 수 있다.
상품을 구입할 때 쇼핑몰 한 곳이 아니라 여러 곳의 후기를 꼼꼼히 읽어 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장바구니에 넣고 단숨에 결제까지 하지 말고 배송비나 추가 비용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습관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