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 이야기

아픈 데를 잘 알아주는
약국

편집실 사진송인호 영상 김수현

전주 명산약국 조덕현 약사*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단정하게 고친다. 난생처음 세상에 자신의 이야기를 알린다며 설렘과 긴장이 섞인 표정으로 카메라 앞에 선 조덕현 약사. 명산약국의 시작을 떠올리는 그의 기억은 55년 전으로 거슬러 간다.

“내 역사가 처음 나오네요. 사진 예쁘게 찍으려면 넥타이도 매야겠어요.”

전주 명산약국의 조덕현 약사는 약대 졸업 직후인 1969년 바로 이 자리에서 개업한 후 지금까지 약국을 이어 왔다. 약을 잘 짓는다고 소문이나 약국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처음엔 이곳에서 월세를 내며 약국을 운영하다가 열심히 일해서 10년 후에 인수했어요. 성실과 근면 하면 자신 있어요.”

# 시련을 희망으로 바꾸기 위해 선택한 길

약대에 진학한 건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옛날에는 면허 없이 약재를 판매하는 약종상이 있었는데, 약의 유통에 관한 법과 제도가 생기면서 약종상에서 계속 약재를 취급하던 사람들이 하나 둘 단속에 걸리게 되었다. 조덕현 약사의 아버지도 그중 한 명이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한 일이었지만 처벌을 피할 수 없었다. 그 일에 충격과 자극을 받은 조덕현 약사는 아버지의 소원을 풀어드리기 위해 노력 끝에 약대에 진학했다. 약으로 인해 아버지와 가족이 함께 힘든 시기를 겪었지만, 이를 계기 삼아 약을 다루는 전문가가 되어 아버지의 꿈을 이뤄 드리고 가족을 돕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약사라는 꿈이 생기기 전에 이미 실업고등학교에 진학했기 때문. 취직을 목적으로 하는 실업고등학교의 수업 내용은 약대 진학이나 약학 전공에 도움이 되는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다.

“따로 학원을 많이 다녔어요. 새벽 네 시쯤 일어나서 갔지요. 약대 공부에 필요한 화학과 수학 과목을 보충하려고요. 첫 강의 듣고, 나름대로 공부하고, 또 저녁 늦게까지 공부했어요.”

# 증상을 자세히 묻고
세심히 살피는 태도가 만든 남다른 감각

명산약국 옆에는 남부시장이 있다. 지금은 시장만 남아 있지만 이전에는 버스 배차장도 있어 유동 인구가 매우 많았다. 시내버스와 시외버스가 정차했다가 또 다른 곳으로 나누어 출발하는 터미널이던 배차장은 완주군 등 주변 시골마을 주민들이 집에 가기 위해 꼭 들러야 하는 곳이었다. 더구나 남부시장도 전주에서 가장 큰 시장이어서 각지에서 장을 보러 왔다. 약이 잘 듣는다고 소문난 명산약국에는 늘 손님이 몰렸다. 약사가 약을 직접 처방하고 임의 조제하던 때였다.

“제가 조제해 드린 약의 효능을 본 손님과, 소문을 듣고 온 손님이 계속 찾아왔어요. 특히 신경통과 피부 질환 계통에서 입소문이 많이 났습니다.”

지금도 증상을 듣고 환자를 살피면 금세 상태를 파악한다. 적합한 병원을 바로 안내해서 도움을 준 적이 많다. 최근에는 단골 손님이 처방전을 가지고 왔는데, 잘 아는 사람이라 어디가 아픈지 물었더니 얘기한 증상이 약만으로는 해결되기 어려워 보였다. 협심증 증상이 분명했고, 급하게 아픔을 호소하는 모습을 보면 처방 약만 먹기보다는 서둘러 응급실에 가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손님을 한참 설득해 큰 병원에 가 검사를 받도록 했다.

“의사가 늦었으면 위험할 뻔했다고 했대요. 수술하고 잘 회복된 다음에 찾아와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더라고요. 머리 아프다는 손님에게 그냥 두통약을 줘도 되지만, 머리가 어떻게 아프냐고 물어보고 증상을 들었을 때 위험한 상황이면 바로 상급 병원으로 보내요. 나중에 그 사람이 다시 찾아와서 선생님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면서 고맙다고 많이 그래요.”

위암 같은 소화기 질환, 심장 질환, 뇌 질환 증세 등 빨리 안내받지 못했다면 위험했을 상황이 많았다고 한다. 경험이 만든 직감이다. 매번 도움을 주었다는 사실에 큰 보람을 느낀다. 손님도 믿고 찾아온다.

“저기 있는 동생과 함께 약국을 운영해 왔어요. 손님이 그렇게 많았는데 혼자서는 못 하지요. 둘이라서 약국을 더 활성화할 수 있었어요.”

두 사람은 곧 약국을 정리하고 쉴 계획이 있다. 약대 동창 45명 중 지금까지 현직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친구는 세 명뿐이다. 이곳에서 55년 동안 한자리를 지켜 온 조덕현 약사는 은퇴 후에 마음껏 구경하고 싶은 곳이 많다고 이야기하며 미소 짓는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요. 한 1년 정도 후에 정리할까 합니다. 이제 나이도 많이 들고 그동안 열심히 했으니까요. 그런데 손님이 계속 오니까 미루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