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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바뀐
한국 ‘과일 지도’

사과, 배가 사라지고 망고, 파파야, 용과를 쌓아 두고 먹는다? 낯선 풍경처럼 여겨지지만 이럴 날이 머지않았다. 아열대 기후로 변한 한반도 기후가 과일 지도를 바꾸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과일이 색다른 맛을 선사하겠지만 기후 위기가 어떻게 다가올지는 미지수다.

김은하 칼럼니스트

호주에서는 2017년부터 한국의 배를 가공한 ‘배 주스(Bae Juice)’가 슈퍼마켓 등지에서 판매되고 있고, ‘서울 토닉(Seoul Tonic)’이라는 숙취 해소 음료도 팔리고 있다. 이 밖에도 미국이나 유럽 등지에서 한국 배를 가공한 식품이 판매되고 있다. 한국에서 배 음료를 마셔 본 현지인이 한국의 배를 수입하여 현지에서 가공한 것이다.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의 배도 한국 배의 아삭한 맛이 나지 않으며, 서양의 배는 결이 다른 과일이다. 한국 배는 매우 달고 단단하면서도 과즙이 풍부하여 한 번 맛본 사람들은 다시 찾는다.

그러나 앞으로 20~30년 정도가 지나면 한국에서는 그동안 먹던 배를 먹지 못할 수도 있다. 비단 배의 문제만은 아니다. 한때 대구·경상북도 지역은 사과로 유명했지만, 현재 사과 재배지는 약 0.8도쯤 위도가 높은 충청북도로 올라갔다. 또한 강원도 영월, 양구와 해발 650m의 태백에서도 사과 재배에 성공했다.

아열대 기후로 변화한 한반도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에 따르면 2040년대 중반이 되면 남한에서 사과 재배가 어려워진다고 한다. 포도, 복숭아 등도 마찬가지다. 제주도 특산품이었던 감귤의 재배지도 전라남도 여수, 경상남도 거창 등으로 북상하고 있다. 한라봉 역시 전라남도 보성, 순천, 나주 등지에서 재배 중이다. 한반도가 점점 더 따뜻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온대 기후권에 속했지만, 최근 평균 기온이 꾸준히 상승하면서 아열대 기후로 바뀌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한반도의 평균 기온은 지난 100년 동안 약 1.5도 상승했다. 이에 따라 2010년 33.9ha에 불과했던 열대 과일 재배 면적이 2020년에는 275.8ha로 약 8배 증가했다.

동남아시아에 놀러 가서 자주 먹던 열대 과일이 한반도에서 재배되고 있다. 제주도에서는 아보카도, 망고, 바나나 등이, 전라남도에서는 구아버, 망고, 용과 등이, 충청남도에서는 파파야가 생산되고 있다. 경상남도에서는 파인애플과 망고가, 경상북도와 충청북도에서는 패션프루트가 재배되고 있다. 강원도에서는 멜론이 자라나고 있다. 심지어 경기도 파주에서조차 애플망고를 수확하고 있다. 제주도 특산품인 노지 재배 감귤은 2070년이 되면 강원도에서도 재배될 것으로 보인다.

먹게 될 과일은 달지만
기후 변화로 인한 재난은?

나이지리아나 콩고의 주식인 카사바는 2050년경이 되면 한반도에 안착할 것으로 보인다. 충청북도농업기술원은 2019년 노지에서 카사바 재배에 성공했다. 올리브나 커피, 퀴노아 등도 한반도에서 키울 수 있는 작물로 여겨지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제주도에서 조선 왕실로 매년 약 1,000~1,500개의 감귤이 진상되었다고 한다. 20kg 한 상자에 작은 감귤이 약 150개 들어가므로 고작해야 10상자 남짓이다. 이를 수십 명이나 되는 왕가 식구들이 나누어 먹고 고관대작에게도 하사해야 하므로 일반 서민들은 도저히 먹을 수 없었던 과일이었다. 1980년대 바나나 한 송이의 가격은 3만4,000원이었는데, 같은 돈으로 전기밥솥이나 한우 선물 세트를 살 수 있었다.

그랬던 감귤이나 바나나가 이제는 저렴한 과일의 대명사가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 지금은 몸값이 비싼 망고나 파파야, 용과를 쌓아 두고 먹을 수도 있겠다. 인간은 쉽게 적응하니 사과나 배를 그리워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먹게 될 과일은 달고 달지만, 기후 변화 위기로 인한 전 지구적 재난은 더욱 맵게 다가올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