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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스트처럼 구워져
만사가 귀찮다면?

한국인은 ‘피곤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엄살이 아니다. 『프런티어스(Frontiers)』를 비롯한 유력 학술 저널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한국인의 40%가 피로를 느끼며, 10%는 만성 피로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미국인의 38%, 영국인의 30%, 스웨덴인의 20%가 피로를 느낀다고 답한 수치에 비해 매우 높은 편이다. 실제로 과로로 인한 사망 비율도 세계 3위인데, 1위와 2위가 멕시코, 코스타리카와 같은 개발도상국이라 선진국 중에서는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구승준 칼럼니스트·번역가

한국인이 지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일을 많이 한다. 2022년 기준 한국 임금 근로자의 평균 연간 노동 시간은 1,910시간이다. 반면 독일은 1,340시간, 프랑스는 1,490시간이며, 고용주의 입김이 강한 미국도 1,811시간에 불과하다.

출퇴근 시간도 너무 길다. 서울시에 따르면, 전국 근로자의 51.6%가 밀집한 수도권의 평균 출근 시간은 대략 90분이다. 9시까지 도착하려면 7시에 일어나서 세수만 겨우 하고 달리듯 집을 나서야 한다. 아침 식사를 하거나 메이크업을 하려면 6시나 6시 반에는 일어나야 한다. 당연하게도 한국인의 평균 수면 시간은 6시간 40분에 불과해 OECD 국가 중 꼴찌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OECD 국가의 평균 수면 시간 8시간 22분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정신적으로도 늘 쫓긴다. 누구는 가상 화폐로 돈을 벌어 빌딩을 사고, 누구는 주식 투자에 성공해서 직장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부동산 투자로 신의 영역이라는 ‘건물주’가 된 사람들도 유튜브에서 ‘나처럼 해 보라’며 부추긴다.

토스트 아웃,
토스트가 구워지듯 심신이 노곤한 상태

이처럼 바쁘고 열심히 사는 한국 사람은 ‘토스트 아웃(Toasted Out)’ 상태에 빠지곤 한다. 이는 지쳐서 무기력한 상태를 나타내는 신조어인데, 토스트가 구워지듯 심신이 축 늘어지는 느낌을 말한다. 과도한 스트레스나 압박으로 신체적, 정신적 탈진 상태에 빠진 번아웃(Burnout)까지 이른 것은 아니다.

‘번아웃’은 1974년 허버트 프로이덴버거(Herbert Freudenberger) 박사가 1974년에 처음 주창했다. 번아웃 상태에서는 만성적인 피로감은 물론 우울감이 심하고 정서적으로도 둔감해지며, 일이나 타인에 대해 무관심해진다. 업무 성과나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도 바닥까지 떨어진다.

번아웃이 완전 탈진 상태라면 토스트 아웃은 일시적 탈진 상태다. 번아웃과 증상은 비슷하지만 충분한 휴식과 재충전으로 회복할 수 있다. 주로 단기적으로 너무 힘든 일을 겪거나 특정 프로젝트가 끝난 후 그간 쌓인 피로를 한꺼번에 느끼는 경우에 나타난다.

토스트 아웃은 사회·문화적 지형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일을 너무 열심히 해 지친 상태를 경험한 사람들은 업무와 삶의 균형, 이른바 ‘워라밸(Work-Life Balance)’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Z세대는 디지털 네이티브로서 인터넷이나 소셜 미디어를 통해 다양한 삶을 접하고 그것을 동경한다. 불안정한 취업과 고용을 경험하면서 ‘회사에 목숨 바쳐도 보상받기 힘들다’는 인식을 지니고 있다. 또한 직업군도 매우 다양해지고, 프리랜서나 원격·재택근무가 많아지기도 했다.

워라밸을 추구하는 최근의 경향으로 인해 자기 관리 문화가 확산, 직장 생활에만 매진하는 게 아니라 운동, 취미 등을 중요시하는 사람들도 많다. ‘원데이 클래스’가 인기를 끄는 이유다. 또한 워라밸을 위해 다양한 방식의 재테크를 시도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특히 Z세대는 가상 화폐나 부동산 투자에 적극적이다. 이전 세대들이 투자에 몸을 사리며 은행 예금이나 적금으로만 재테크를 하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토스트 아웃에서 벗어나는 법

먼저 내가 어떤 상태인지 알아야 한다. 입맛이 없다거나, 음악이나 영화를 접해도 예전처럼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거나, 자신감이 극도로 떨어지거나, 자도 자도 피곤하다면 당신은 토스트 아웃 상태일 가능성이 크다.

토스트 아웃 상태에 빠졌더라도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면 금방 회복된다. 그러나 근본부터 개선하지 않으면 힘들 때 다시 토스트 아웃 상태에 빠질 것이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높은 회복 탄력성(Resilience)을 가질 수 있도록 체질을 개선하도록 하자.

이를 위해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스스로 자존감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 마음을 터놓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우군을 확보하는 게 좋다. 틀에 박힌 사고보다는 상황에 따라 새로운 대처법을 찾을 수 있는 유연한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육체적 회복 탄력성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어쩌면 정신적인 면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토스트 아웃 극복에 ‘균형 잡힌 식사’가 얼마나 큰 도움을 주는지 알지 못한다. 영양 섭취가 불균형하다면 인체 또한 그에 상응하는 에너지를 내며 호르몬 분비에도 문제가 생긴다. 여건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우선 하루 한 끼만이라도 제대로 먹고, 비타민제도 챙겨 먹는 게 좋겠다.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식이섬유 등을 골고루 섭취하는 것이 좋다. 비타민 B는 피로 해소에 도움을 주며, 비타민 C는 항산화제로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을 준다. 비타민 E는 세포를 보호하고 피로 해소를 도우며, 마그네슘은 근육 이완과 신경 안정에 도움이 된다.

운동 또한 토스트 아웃 상태 극복에 큰 도움이 된다. 시간이 없다면 ‘자투리 운동’을 시작해 보자.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하고 점심 식사 후 빠르게 걷는 것도 도움이 된다. 틈이 날 때마다 스트레칭을 할 수도 있다. 한 시간에 한 번씩은 앉은 자리에서 목과 어깨, 허리 스트레칭을 하는 것이 좋다. 운동을 하면 심혈관계 건강이 증진되고 엔도르핀이 분비되어 스트레스가 줄어들며, 수면의 질도 향상된다.

음악, 미술, 운동, 요리 등의 취미 활동을 하면 뇌에서 긍정적인 호르몬이 분출된다. 며칠 동안은 퇴근 후 ‘디지털 디톡스(Digital detox)’를 하는 것도 좋다. 디지털 기기의 과도한 사용은 스트레스 호르몬을 증가시킬 수 있고, 전자 기기의 블루라이트는 멜라토닌 생성을 억제하여 수면을 방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