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로 쌓은
57년의 시간
글 편집실 사진송인호 영상 김수현
원주 제일약국
나기정 약사*
매일 아침 8시에 약국 문을 열고 저녁 7시에 닫는 생활을 57년간 변함없이 이어 온 나기정 약사. 규칙적인 생활이 몸에 배었듯, 약국을 찾는 분들의 증상을 귀 기울여 듣고 배려하는 마음도 한결같다. 그렇게 쌓인 시간이 지금도 제일약국을 지키고 있다.
# 제2의 고향 원주에서 시작한 약국
“약국 운영은 평생 해 온 일이고 제 인생입니다. 약국 문을 열고 닫는 것도 습관이 되었다고 할까요? 일정한 시간에 문을 열고 닫고, 약국을 찾는 분들에게 최선을 다해서 정성스럽게 약을 드리는 일이 습관처럼 몸에 배었죠.”
충북이 고향인 나기정 약사는 충북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했다. 약대를 졸업하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른 채 주변에서 권하는 대로 약대에 진학했다. 입학하고 수업을 받으면서 약대를 졸업하면 약사가 될 수 있고, 약국을 개업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약대를 졸업하고 곧이어 결혼을 한 나기정 약사는 처가가 있는 원주로 이주해 약국을 개업했다.
“원주는 저에겐 제2의 고향입니다. 원주에서 산 세월이 더 길어요. 살아 보니 원주가 참 좋습니다. 조용하고 깨끗하고 사람들도 참 좋아요. 저는 이제 충청도 사람이라기보다도 강원도 원주사람이죠.(웃음)”
1967년 2월, 지금은 없어진 건너편 단관극장 옆에 약국 문을 열었고 몇 년간 그곳에서 약국을 운영하다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약국을 시작할때만 해도 이곳은 원주에서 가장 중심지였다. 그러다 신도시인 혁신도시와 기업도시가 생기면서 중앙로로 모이던 사람들이 점점 흩어졌고, 중앙로는 ‘구도심’으로 쇠락의 길을 걷게 됐다.
“주변에 여섯 개가 넘게 있던 의원도 이제 한두개 정도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우리 약국도 의약 분업 전에는 근무 약사를 두고 운영할 정도로 바빴어요. 피부약이나 소화기계 약을 많이 조제했고, 잘 듣는다고 소문나기도 했지요. 그땐 휴일도 없이 약국 문을 열어 두던 때였어요. 동네 사랑방처럼요.
# 약사가 된 건 참 잘한 일
나기정 약사는 약대를 나와 약사가 되길 참 잘했다고 말한다. 아픈 사람에게 약을 지어 주어 낫게 하고, 오며 가며 들르는 손님들과 대화하며 인생 공부도 한다. 보고 듣고 배우는 것도 많아 살아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약사님 덕분에 다 나았다’, ‘약을 잘 지어 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받을 때도 약사가 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또 이런 인사를 받을 때면 건강하게 오래도록 약국을 지키고 싶어진다고도 한다. 매일 같은 시간에 약국 문을 열고 닫으며 이웃들과 오래도록 함께하고 싶는 마음에서다.
“술, 담배 안 하고 규칙적으로 생활하며 건강에 도움 되는 식단으로 잘 챙겨 먹는 게 건강 비결입니다. 가끔 후배들과 모임도 갖고요. 별것 없어요. 일상을 유지하면서 신체 활동을 늘리고, 즐겁게 생활하는 거죠.”
나기정 약사는 전산 시스템에도 잘 적응해 아주 능숙하지는 않지만 약국에서 필요한 업무는 컴퓨터로 모두 처리한다. 처음 접하는 어려움 앞에서 물러서지 않고 필요한 부분은 배우고 익혀서 자신의 힘으로 헤쳐 나가며 57년의 세월 동안 약국을 지켜 온 것이다. 예전만큼 손님으로 북적이는 약국은 아니지만 지금의 나이까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점과 봉사하는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점에서 약사라는 직업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 기본을 지키는 자세로
57년 동안 한길을 걸어 온 나기정 약사에게 이제 약국을 시작하려는 까마득한 후배에게 조언을 부탁하니 ‘친절’을 가장 중요한 자세로 꼽는다.
“약국도 고객 우선주의로 친절이 가장 중요합니다. 노약자, 특히 혼자 사는 노인이나 형편이 좋지 못한 분들에게는 편안함을 드리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늘 곁에 있다는 의미로 문 여는 시간과 닫는 시간을 일정하게 지키는 것도 중요해요. 갑자기 아플 때 약을 구할 수 있는 곳, 마음 놓고 아픈 곳을 이야기할 수 있는 곳,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곳이라는 이미지를 가질 수 있도록 말이죠.”
특별한 건 아니라면서 일러 주는 조언은 어떤 일을 하든 꼭 필요한 기본자세를 잘 설명하고 있다. 별것 아니라고 넘기기 쉽지만 가장 기본이 되는 것들을 지켜 온 것이 나기정 약사가 57년간 약국을 운영해 온 비결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