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적극적인 치료로
다시 건강하게
글 방영롱 울산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일조량이 떨어지는 계절이 되면 마음이 스산해지곤 한다. 일시적으로 계절을 타는 정도라면 괜찮지만 기간이 길어지고 다른 증상이 동반된다면 우울증이 아닌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우울증인 경우 적극적인 치료로 건강을 되찾는 것이 중요하다.
우울증은 조기 진단과 치료로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는 질환이다. 최근 들어 성인뿐 아니라 우울증을 앓는 아이와 노인까지 많아져 더욱 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우울증 환자 수도 증가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9년 우울증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 수는 79만 6,364명이었다. 2021년에는 91만 명이 넘었고, 2023년에는 104만 6,816명으로 100만 명 이상이 우울증을 호소하며 병원을 방문했다.
우울증은 생각의 내용, 사고 과정, 동기, 의욕, 관심, 행동, 수면, 신체 활동 등 전반적인 정신 기능이 지속적으로 저하되어 일상생활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상태를 의미한다. 정신 의학에서 말하는 우울한 상태란 ‘일시적’으로 기분이 저하되는 상태가 아니다. 즐거운 일이 있을 때 즐겁고, 슬픈 일이 있을 때 슬퍼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건강한 감정으로, 이러한 상태에서 벗어나 우울함과 함께 여러 증상이 동반되는 것을 가리킨다.
다양한 원인이 작용하는 우울증
우울증의 확실한 원인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다른 정신 질환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생화학적, 유전적, 환경적 요인이 영향을 미친다.
① 생화학적·생물학적 요인 뇌 안에 있는 신경 전달 물질(노르에피네프린, 세로토닌, GABA 등)과 호르몬(갑상선, 성장 호르몬,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피질 축) 이상, 생체 리듬의 변화와 관련이 있다.
② 유전적 요인 일란성 쌍둥이의 경우, 한 명이 주요 우울증을 앓고 있으면 다른 한 명도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50%가량 된다고 한다. 따라서 주요 우울증 발병에 유전적 요소가 작용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유전적 요소로 설명되지 않는 요인도 우울증 발병에 영향을 끼치며, 현재까지 주요 우울 장애와 관련하여 일관성 있게 보고된 유전자 이상은 없다.
③ 신체적 요인 갑상선 질환(갑상선 기능 저하증 등), 내분비 질환(당뇨병 등), 뇌졸중, 종양 등이 있으면 우울증이 발병할 수 있다.
④ 환경적 요인 스트레스만으로 우울증이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우울증 증상 발현에 영향을 준다고 알려져 있다. 살아가면서 대처하기 어려운 상황이 우울증을 유발하는 환경적 요인이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이혼, 사별 등), 경제적 문제, 트라우마적 사건(강도, 성범죄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⑤ 심리·성격적 요인 낮은 자존감, 의존적 성격, 완벽주의 등은 우울증과 연관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치료가 필요한 우울증 주요 증상
① 우울 증상이 2주 이상 오래간다 일시적인 우울 상태라면 대개 며칠 안에 괜찮아지기 마련이지만 2주 이상 장기화된다면 치료가 필요하다.
② 식욕과 수면 문제가 심각하다 입맛이 없어서 거의 식사를 못 하거나 반대로 폭식하는 경우도 있다. 잠을 거의 못 자거나 반대로 너무 많이 자기도 한다. 이처럼 식욕과 수면 문제가 심하다는 것은 약물 치료가 필요한 상태임을 의미하는 중요한 증상이다.
③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주관적 고통이 심하다 우울증 환자들은 스스로 우울증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견디기가 매우 힘들다고 느낀다. 상태가 나아지지 않고 계속될 것이라는 비관적인 예상이 들면 자살 기도를 하기도 한다. 혼자 힘으로 회복하기 어려운 상태이니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④ 사회적, 직업적 역할 수행에 심각한 지장이 있다 우울증 상태에서는 여러 가지 일이 잘 안될까 봐 많이 걱정하지만, 정작 그 일을 해결하기 위한 실행 능력은 매우 떨어진다. 가정주부가 살림을 전혀 못 하거나, 학생이 공부를 할 수 없을 정도면 치료가 필요한 상태로 봐야 한다.
⑤ 환각과 망상이 동반되는 경우 우울증 중에는 정신병적 증상인 환각이나 망상이 동반되기도 한다. 이런 경우 자·타해 위험성이 높으므로, 우울 증상의 심각도와 상관없이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
⑥ 자살 사고가 지속되는 경우 자살 충동을 느끼고 실제 행동에 옮기거나 이로 인한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경우 치료가 필요하다.
우울증의 객관적 진단 방법
주요 우울증은 정신 건강 의학과 전문의가 진료를 통해 병력을 청취하고 환자의 상태가 진단 기준에 부합하는지 확인한 후 진단한다. 이 과정에서 심리 검사를 통해 다른 정신 질환의 공존 여부, 지능 등 필요한 정보를 보충할 수 있다. 아울러 신체 질환에 의한 이차적 우울증을 감별하기 위해 혈액학적 검사 및 뇌 영상 검사 등을 시행할 수 있다.
6개월 이상의 유지 요법으로 치료
약물 치료와 더불어 정신 치료적 접근을 함께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치료 방법이다. 이 외에도 전기 경련 요법과 광선 치료 등이 활용되고 있고, 최근에는 자기장 치료(rTMS, repeated Transcranial Magnetic Stimulation)가 효과가 있음이 연구를 통해 보고되었다.
약물 치료의 경우, 항우울제 개발에 뚜렷한 진전이 있어 과거에 주로 사용하던 약물에 비해 부작용은 적으며 충분한 효과를 보이는 약물들이 개발되었으며 지속적인 개선과 진보가 이루어지고 있다.
주로 작용하는 신경 전달 물질 체계에 따라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 세로토닌-노르에피네프린 재흡수 억제제(SNRI), 노르에피네프린-도파민 재흡수 억제제(NDRI) 등 다양한 계열의 약물들이 개발되었고 임상 현장에서 효과를 보인다. 항우울제는 일반적으로 효능이 수일에서 수 주에 걸쳐 나타나므로 최소 4~6주 정도는 복용을 지속해야 약물의 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약물 용량 조절, 약물 교체 등으로 인하여 호전될 때까지의 기간이 더 길어질 수도 있다.
정신 건강 의학과 전문의와 치료적 신뢰 관계를 맺고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치료에 임하는 것, 그리고 증상이 좋아진 후 약물 유지 요법을 이어 가는 것이 재발 방지에 필수적이다. 호전된 후라도 임의로 약 복용을 중단하지 않아야 한다. 최소 6개월 이상의 유지 요법이 권장되니 좋은 예후를 위해서 본인의 증상과 경과를 주치의와 잘 공유하고 의논하는 것이 필요하다.
주요 우울장애의 진단 기준(DSM-5)
① 2주 이상 거의 매일 지속되는 우울한 기분
② 일상 대부분의 일에서 관심 및 흥미 감소
③ 식욕 감소 또는 증가
(체중 감소 또는 증가, 한 달에 5% 초과)
④ 불면 또는 과다 수면
⑤ 정신 운동 지연 또는 정신 운동 초조
⑥ 피곤 또는 에너지의 감소
⑦ 무가치감, 부적절한 죄책감
⑧ 집중력 저하, 우유부단
⑨ 반복적인 자살 생각
위에서 언급한 증상 중 다섯 개 이상(1, 2번 중 하나 이상 포함)에 해당하고, 이러한 증상이 일상생활을 심각하게 저해한다면 주요 우울장애로 진단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