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히 나타나는 약효가
충분해질 때까지
많은 사람이 스트레스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우울증, 불안 장애, 불면증 등 정신 질환으로 진료를 받은 사람이 300만 명을 넘었으며 이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라고 합니다. 정신 질환 치료제를 복용할 때 주의할 점은 무엇인지 알아봅니다.
글 정희진 울산대학교병원 약제팀 약사
우울증, 우울 장애는 ‘마음의 감기’라고 표현하지만, 감기처럼 일주일 정도 지나면 저절로 낫는 질환은 아닙니다. 우울 장애의 원인은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유전적 요인, 환경적 요인, 뇌 신경 전달 물질의 불균형 등 여러 가지가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원인 중 기분과 관련된 뇌 신경 전달 물질의 불균형을 바로잡아 주는 약물들이 우울 장애 치료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항우울제들은 부족한 신경 전달 물질이 늘어날 수 있도록 여러 방법으로 작용해 기분을 좋게 하고 의욕을 높여 줍니다. 뇌의 여러 신경 전달 물질 중 우울 장애와 관련된 물질로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도파민이 알려져 있습니다. 항우울제는 이 같은 신경 전달 물질에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따라 다음과 같이 나뉩니다.
세로토닌으로 우울 증상 완화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는 세로토닌이 재흡수되지 않게 막음으로써, 활동하는 세로토닌이 늘어나게 해 우울 증상을 완화합니다. 에스시탈로프람, 플루옥세틴 등의 성분이 있습니다. 가장 일반적으로 쓰이며 우울증 외 강박 장애 등 다른 질환 치료에도 쓰입니다. 다른 항우울제에 비해 부작용이 적고 실수로 다량 복용했을 때도 비교적 안전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부작용으로는 식욕 부진, 긴장감, 불면증, 졸림 등이 있는데 대개 그 정도가 심하지 않고 몇 주 안에 사라집니다. 하지만 일부 환자에서는 투여를 시작하거나 용량을 늘린 첫 1주 동안 불안이나 우울 증상이 더 심하게 나타나는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그 밖에 오래 사용하면 체중 증가, 성기능 장애 등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재흡수 억제제에는 둘록세틴, 벤라팍신 등의 성분이 있습니다. 우울증뿐 아니라 당뇨병성 말초 신경병증 치료나 범불안 장애 등 다른 질환 치료에도 쓰입니다. 부작용으로는 두통, 식욕 부진, 불면증, 발한, 성기능 장애 등이 있습니다. 이 중 벤라팍신을 복용하면 혈압이 높아질 수 있으므로 고혈압 환자는 혈압 관리에 더욱 신경 써야 합니다.
약과의 상관관계도 잘 살핀 후 복용
삼환계 항우울제는 뇌에서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도파민의 재흡수를 막아서 이들이 많이 활동할 수 있도록 합니다. 아미트리프틸린, 이미 프라민 등의 성분이 있으며 야뇨증이나 강박 치료에 쓰이기도 합니다. 부작용으로는 입 마름, 현기증, 인지 능력 저하, 체중 증가, 성기능 장애 등이 있습니다. 특히 전립선 비대증 환자가 소변 보기를 힘들어하거나 녹내장 환자의 안압이 올라갈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합니다. 또, 기립성 저혈압으로 넘어질 위험이 높아질 수 있으니 노인 환자는 누운 상태에서 일어설 때 천천히 움직여야 합니다.
모노아민 산화 효소 저해제는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이 없어지는 것을 막는 약이며 성분으로 모클로베미드가 있습니다. 사회 공포증 치료에도 쓰입니다. 심한 부작용으로는 갑작스럽고 심각하게 혈압이 오르는 고혈압성 위기 등이 있으며, 치즈나 버터 같은 발효유 가공식품을 함께 먹었을 때 발생 위험이 커지니 약 복용 중 이러한 음식은 피해야 합니다. 그 밖에 섬망이나 근육 강직 등을 일으킬 수 있는 세로토닌 증후군도 나타날 수 있는데, 이는 세로토닌 활성을 높이는 약물 여러 개를 함께 복용했을 때 발생 위험이 커집니다. 따라서 세로토닌을 높이는 다른 항우울제와 동시에 복용하거나, 다른 항우울제를 중단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복용하는 일은 피해야 합니다.
임의로 약 중단은 금물
항우울제는 투여 후 효과가 나타나는 데 시간이 걸립니다. 처음 복용하고 2~3주 후부터 효과를 보이기 시작하며 대개 4~6주 정도 지나면 충분한 효과가 나타납니다. 복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증상이 나아지지 않았다고 전문가와 상의 없이 임의로 복용을 중단하면 안 됩니다. 갑자기 복용을 중단하면 어지러움, 수면 장애, 무력증, 초조 등의 금단 증상이 나타날 수 있고, 우울 증상이 심해지거나 재발할 수 있습니다.
항우울제를 평생 복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나 우울 증상이 나아지더라도 재발을 막기 위해선 수개월간은 더 복용해야 합니다. 그 후 점차 감량하다 중단할 수도 있습니다. 또, 항우울제 부작용 중 대부분은 저용량을 사용하거나 서서히 용량을 변화시키면 최소한으로 관리할 수 있습니다.
공황 장애에는 항우울제뿐 아니라 벤조디아제핀계 약물을 사용합니다. 항우울제가 뇌의 신경전달 물질의 불균형을 조절해 공황 장애 증상을 개선하고, 벤조디아제핀계 약물은 급성 증상을 완화합니다. 알프라졸람, 클로나제팜이 성분인 약이 벤조디아제핀계 약물에 포함됩니다. 부작용으로 졸음, 주의력이나 집중력 저하가 일어날 수 있으니 운전이나 위험한 기계 조작 시에는 주의가 필요합니다. 또한 투여 중에 초조함, 과민성, 망상, 환각 등이 나타나면 즉시 주치의와 상의하셔야 합니다.
복용 여부는 전문가와 상의
다른 약들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나 정신 질환에 사용하는 약물은 여러 증상에 쓰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우울 장애에서도 증상에 따라 항우울제만 사용하기도 하고 항불안제나 항정신병 약물을 추가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약 봉투에는 대표적인 명칭 하나만 적혀있습니다. 간혹 ‘난 조현병이 아니라 우울 장애인데 왜 항정신병 약물이 있는 거지’ 하며 임의로 빼는 분들이 계시는데, 한 가지 약이 다양한 목적으로 쓰일 수 있음을 꼭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정신 질환에 사용하는 약물 중에는 ‘향정신성 의약품’이 많습니다. 이런 약을 복용하시는 분들 중에 중독이나 부작용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하시는 경우를 종종 접합니다. 향정신성 의약품은 뇌의 신경 전달 물질을 조절하는 약 중에 잘못 쓰거나 많이 쓸 위험이 높은 약물을 뜻하는 용어로, 전문가의 처방대로 약을 사용한다면 위험은 낮추고 정신 질환 개선에 필요한 정도로만 신경 전달 물질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복용 여부를 임의로 판단하지 마시고 반드시 전문가와 상담하며 본인에게 맞는 약과 용량을 찾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