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플레이션의 역설
최근 전 세계적으로 탄소 중립을 목표로 한 친환경 정책이 확산되면서
그린플레이션이 중요한 경제적, 환경적 도전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린플레이션(Greenflation)은
친환경 에너지 전환과 규제 강화로 인해 원자재와 에너지 가격이 상승하면서 발생하는 물가 상승 현상을 의미한다.
친환경 전환이 의도와 달리 경제적 부담을 가중하고, 환경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역설적 상황 속에서
그린플레이션이 심화되고 있다.
글 김은하 칼럼니스트
유럽은 그린플레이션의 대표적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유럽연합(EU)은 2030년까지 탄소 배출을 55% 감축하기 위해 탄소 배출권 거래제(ETS)를 강화하고 석탄 사용을 억제하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으로 인해 천연가스 공급이 불안해지면서 2022년에는 2021년 대비 천연가스 가격이 300% 이상 급등하며 시민들이 내는 전기료와 난방비가 폭등했다. 석탄보다 상대적으로 깨끗한 천연가스 에너지 수요를 충족하지 못해 독일은 석탄 발전소를 재가동해야 하는 역설적 상황에 처했다. 이는 친환경 전환을 목표로 했지만, 오히려 화석 연료 의존도를 다시 높이는 결과를 낳았다.
탄소 발자국 감소 노력에 역행
미국에서도 그린플레이션이 심각하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2050년 탄소 중립을 목표로 전기 차와 재생 에너지에 대한 투자를 확대했지만, 비슷한 시기 중국에서도 전기 차 수요가 늘면서 리튬, 코발트, 니켈 같은 전기 차 배터리 원자재 가격이 급등했다. 리튬 가격은 2021년부터 2022년 사이 500% 상승했고, 이는 전기 차 생산비와 가격을 상승시키며 전기차 보급에 차질을 빚고 있다. 또한 미국은 태양광 패널 수요 증가로 중국산 패널에 의존하게 되었는데, 중국산 패널은 석탄 발전으로 제조되었기 때문에 탄소 발자국을 줄이려는 노력에 역행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한국도 그린플레이션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 2022년 LNG 가격이 급등하면서 전기 요금이 16년 만에 최대 폭으로 인상되었고, 이로 인해 에너지 비용 부담이 커졌다. 특히, 철강과 반도체 같은 에너지 집약적 산업은 전력 비용 상승으로 생산비가 증가했고, 일부 석탄 발전소를 재가동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최근 삼척 석탄 화력 발전소 건설을 강행하여 환경 단체와 마찰을 빚고 있다. 또한, 전기차 배터리 제조 업체인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는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인해 생산비가 크게 늘었고, 이는 전기 차 보급 속도를 늦추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린플레이션에 현명한 대응 필요
친환경 제품과 포장재 제조 비용 상승도 큰 문제다. 친환경 포장재로 전환하려는 기업들이 많아지면서 바이오 플라스틱과 재활용 종이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는데, 이러한 소재는 기존 플라스틱보다 30~50% 더 비싸다. 이로 인해 기업들은 추가적인 물류비와 생산비 부담을 겪고 있으며, 소비자들은 이러한 비용 상승을 가격 인상으로 체감하게 된다.
그린플레이션을 극복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려면 기업은 재생 에너지 기술의 발전과 친환경 소재의 대량 생산 체계를 구축해 비용을 낮추고, 정부는 연구 개발 지원이나 친환경 기업에 대한 규제 완화, 원자재 확보 등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우리가 맞이한 그린플레이션이 과도기적 현상일지, 극복 불가능한 난제일지는 우리의 대응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