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 이야기

광주 동구의 따뜻한 터줏대감

천수당약국 오승탁 약사*

광주광역시 동구 광산동, 예전 광주시청이 있던 곳 건너편에 자리한 천수당약국은 올해로 문을 연 지 56년이 됐다. 동구의 번성기를 함께한 천수당약국은 지금도 동구 주민과 이곳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새벽까지 불을 밝히고 있다.

편집실 사진 백기광, 송인호 영상 김수현

장흥 관산면 관산읍에서 태어나고 자란 오승탁 약사. 중학생 소년 시절의 어느 장날, 자전거를 타고 읍내에 나갔다가 ‘서울약국’이라는 약국을 보게 됐다. 흰 가운을 입고 약을 짓는 약사의 모습이 멋있어 보여 그길로 ‘나도 약사가 돼야겠다’ 마음먹었다. 광주에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한 오승탁 약사는 중학교 때의 다짐을 생각하며 공부에 매진했고, 조선대학교 약대에 합격했다.

당시 조선대 측에서는 4학년은 서울 소재 약대에서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했다. 오승탁 약사는 졸업을 앞두고 서울에서 생활하며 학업을 이어 갔고, 약사 자격증도 취득하며 약사로의 꿈에 한 발짝씩 다가갔다.

“약대를 나왔으니 약국을 개업해야 하는데, 부모님이 고향인 전남 장흥에 내려와서 농사를 지으라고 하셨어요. 당시 농사를 좀 크게 하셨으니 저도 내려와서 일손을 돕고 가업을 이으라고 하신 거죠. 부모님 말씀을 어길 수가 없어서 졸업 후에 장흥으로 내려가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렇게 2년 정도 농사일을 했지만 오승탁 약사는 약사의 꿈을 포기할 수 없었다. 결국 친구가 운영하는 전주의 약국으로 도망치듯 집을 나왔다. 부모님과 의논했다가는 반대하실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감초당약국에서 조제를 배우고 약사로 일하면서 부모님께 편지를 보냈고, ‘네가 그렇게 하고 싶으면 어디 자리를 한번 찾아보라’는 아버님의 승낙에 지금의 광주 동구로 오게 됐다.

# 광주의 중심 동구에서 일군 천수당약국

‘하늘 천’, ‘목숨 수’의 천수당약국은 오래전부터 오승탁 약사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약국 이름이었다. 자신이 지은 약을 드신 분들이 모두 천수를 누렸으면 하는 바람이 담겼다. 지금의 자리 건너편에서 1970년 문을 열어 약국 운영을 시작했고, 4년 만에 현재의 자리에 있던 이층집을 살 정도로 잘됐다고 한다.

“1990년대 후반에 4층으로 건물을 새로 지어서 이 자리로 옮겼어요. 바로 앞이 광주시청이었으니 약국이 참 잘됐지요. 또 주변이 유흥가여서 오가는 사람도 많았고요. 충장로가 가깝고 관청이 다 이쪽에 있었죠. 우리 약국 주변 100m 안으로 병원이 42곳 있었고 약국도 거리마다 있었는데 이제는 다 대학병원 근처로 분산됐습니다.”

그렇게 도심에서 약국이 사라졌지만, 오승탁 약사는 1980년 공공심야약국으로 지정된 후로 매일 새벽 1시까지 약국을 지키고 있다. 저녁 9시~새벽 1시까지 반드시 약사가 상주해야 하는 규칙을 엄수하며 공공심야약국으로 운영한다. 주변에 약국이 없고 심야 유동 인구가 많은 지역 특성상 늦은 시간에 약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시작한 일이다.

이제는 습관이 되어서 힘든 것보다 보람이 훨씬 크다는 오승탁 약사는 86세에도 밤늦게까지 약국을 운영할 수 있는 비결로 규칙적인 생활을 첫손에 꼽았다. 아울러 자신만의 건강 비결은 식초 섭취라고 귀띔했다.

“제가 주변 사람들에게도 식초를 먹으라고 꼭 권합니다. 매일 50cc 정도씩 하루 두 번 아침저녁으로 먹고 있어요. 식초를 먹은 지 15년 정도 됐는데 얼굴 주름이 없고 피부가 좋다는 말을 많이 듣고, 특별히 아픈 곳도 없습니다. 저는 식초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 90세까지 약국에 남고 싶은 약사

“제 주관이 내일 죽어도 오늘 활동하자는 주의입니다. 활동을 해야 덜 늙고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것 같아요. 매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데 감사하면서 지냅니다. 지역 번영회, 종친회, 라이온스클럽, 새마을금고 등 오랫동안 몸담은 지역 모임에는 빠지지 않고 나가려고 합니다. 나이 들어서 제가 움직여야지 가만히 있으면 오라는 곳이 점점 없어져요. 활동할 수 있을 때까지 참여하면서 사람들과 교류해야지요.”

56년째 골목을 지키는 천수당약국을 잊지 않고 찾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따금 ‘옛날 누구 집 자식’이 찾아오는데, 약국이 그대로 있어서 정말 놀랍고 반갑다며 한참을 약국에 앉아 있다가 가기도 한다. 약을 직접 조제하던 시절 오승탁 약사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약국을 드나들던 주민의 자녀들도 약국에 들러 추억에 젖기도 한다고.

90세까지 약국을 운영하고 싶다는 오승탁 약사에게 90세 넘어서도 거뜬히 운영하실 것 같다고 하자 손사래를 친다. 전에는 겨울이면 몇 번씩이라도 눈길을 쓸고 여름이면 더위를 식히기 위해 물을 뿌리며 오가는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지만, 지금은 다리가 불편하고 기력도 예전만 못하다고. 그렇지만 지금의 자리로 옮기며 제작해 30년 가까이 함께한 약장과 약국 내외부를 매일 쓸고 닦는 그에게선 여전히 생기가 느껴진다.

“마음은 한결같지만 몸은 예전처럼 부지런히 움직일 수가 없어요. 그래도 이렇게 매일 약국에 나와서 내 일을 하고 있으니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사는 셈이지요. 동구를 찾는 사람들 위해서라도 건강 지키면서 약국도 지키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