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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모와 함께 한 인류의 역사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는 탈모의 고통을 ‘세월은 머리카락을 가져가는 대신 지혜를 주었다’라는 말로 위안을 삼았으나, 탈모는 동서고금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두의 걱정거리였다. 세월과 함께 지혜도 얻고 머리카락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김효진 에이치플러스 양지병원 약제팀장

현재까지 남아 있는 기록에서 확인 가능한 탈모 치료의 역사는 기원전 155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이집트의 의학 문서인 ‘에베르스 파피루스(Ebers Papyrus)’에는 하마·악어·수고양이 등의 지방을 섞어 머리에 바르는 탈모 치료법이 기록되어 있다. 기원전 400년경 히포크라테스는 아편, 장미, 백합, 포도주, 올리브오일, 아카시아즙을 혼합한 연고를 직접 처방, 탈모증에 사용했다고 한다. 『동의보감』에도 ‘머리털이 노랗게 시들어 갈 때는 곰의 기름을 발라 주고 빠질 때는 곰의 골수로 기름을 내어 발라 준다’며 곰의 기름을 탈모약으로 쓴 기록이 있다. 동서고금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탈모는 심각한 고민이었고 탈모 치료는 풀기 어려운 숙제였다.

탈모, 피할 수 없지만 늦출 수는 있다

하루에 약 50~70개까지의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은 정상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자고 나서나 머리를 감을 때 빠지는 머리카락의 수가 100개가 넘으면 병적인 원인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탈모의 원인은 다양하다. 탈모는 임상적으로 흉터가 형성되는 것과 형성되지 않는 것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으며, 흉터성 탈모증[흉터성 모발 손실]은 모낭이 파괴되므로 모발의 재생이 되지 않는 반면, 흉터가 형성되지 않는 탈모는 모낭이 유지되므로 증상 부위가 사라진 후에 모발이 재생된다. 탈모증 중에서 빈도가 가장 높은 것은 안드로젠 탈모(유전성 안드로젠성 탈모, 대머리로 표현하기도 함), 원형 탈모, 휴지기 탈모 등 모낭이 유지되는 탈모로, 적극적인 예방과 초기 치료·관리를 통해 탈모를 늦추고 완화할 수 있다.

전체 탈모증의 85~90%로 추정되는 유전성 안드로젠성 탈모는 유전자, 노화, DHT 호르몬이 주요 원인이다. 여성형 탈모에서도 일부는 남성형 탈모와 같은 경로로 일어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임상적으로 그 양상에 차이가 있다. 원형 탈모증은 자가 면역 질환으로 생각되고 있다. 휴지기 탈모증은 내분비 질환, 영양 결핍, 약물 사용, 출산, 발열, 수술 등의 심한 신체적, 정신적 스트레스 후 발생하는 일시적인 탈모로 모발의 일부가 생장 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휴지기 상태로 이행, 탈락되어 발생한다. 따라서 원인에 따라 모발의 성장 주기를 감안하여 약물 요법 등 꾸준한 치료가 필요하다.

탈모 치료제의 종류

현재, 탈모 치료제로 피나스테리드/두타스테리드 제제의 먹는 약과, 미녹시딜 제제의 바르는 약 이렇게 세 가지가 FDA 허가를 받았다. 이 탈모 치료제들의 개발은 우연한 발견과 전략적 연구의 합작품이었다.

5α 환원 효소 저해제(피나스테리드/두타스테리드) 인체 내(전립선, 간, 피부)에서 5-알파 환원 효소라는 효소가 테스토스테론(testosterone)을 다이하이드로테스토스테론(dihydrotestosterone, DHT)으로 바꾼다. 문제는 이 DHT라는 것이 유독 머리 쪽 모낭에만 작용하여 탈모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1974년에 도미니카공화국의 남자아이 일부에서 5-알파 환원 효소(5-alpha reductase, 5AR)의 결핍 현상이 발견되었는데, 이 아이들은 DHT 수치가 매우 낮았으며 전립선의 크기도 작았고 남성형 탈모도, 여드름도 없었다. 오리지널 약의 상표명인 프로페시아(Propecia)로 잘 알려진 먹는 탈모 치료제, 피나스테리드를 개발한 미국 머크社의 연구원들은 여기에 착안하여 5AR의 작용 차단을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의약품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다.

피나스테리드(finasteride)는 바로 이 5-알파 환원 효소의 상경적 저해제로 DHT의 생성을 막음으로써 탈모를 막는다. 머크사는 이 약품이 전립선 비대증과 함께 탈모에 적용될 수 있다고 봤는데, 의학적 관점에서 전립선 비대증을 치료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여 이를 먼저 개발해 1992년에 5mg 피나스테리드 제제가 ‘프로스카’라는 상품명으로 FDA 승인을 받았다. 이후 프로스카를 복용한 환자 중 일부가 탈모 개선 효과를 보이는 임상 보고에 주목했고, 농도 조절로 탈모 치료가 가능해지는 기전과 안정성 및 효능에 관한 임상적 필요조건을 검토한 후 1997년 FDA에 1일 1mg 용량 피나스테리드를 남성형 탈모용으로 허가받았다.

미녹시딜(minoxidil) 미녹시딜은 원래 1950년대에 미국 화이자社(舊 업존)에서 궤양 치료제로 개발된 약이었는데, 궤양에는 효과가 없고 혈관 확장에 큰 효과가 있음이 밝혀지면서 추가 개발을 통해 1979년 경구 복용하는 고혈압 치료제인 로니텐이라는 브랜드로 FDA의 승인을 받았다. 이 약의 사용 도중 예기치 않은 부작용으로 다모증이 확인되었고, 그 결과 1988년 로게인이라는 이름으로 현재 바르는 탈모 치료제 미녹시딜이 출시되었다. 탈모 부위에 직접 발라 사용(외용)하는 미녹시딜은 모발 성장 주기에서 모발의 성장기를 늘리고 휴지기를 줄여 모발의 재생을 돕는다.

다양한 약물과 치료법 등장

탈모 치료의 오랜 역사만큼 다양한 천연물, 약물과 치료법이 검토, 연구되어 왔다. 탈모는 증상에 따라 치료 방법에 차이가 있으나 근본적으로 건강한 모발 성장을 위한 두피 환경 개선과 모발 세포에의 적정 영양 공급이 필요하다. 모발 성장에 필수적인 영양소인 단백질과 비타민(특히 비타민 B)이 많이 함유된 음식이 좋다. 예를 들어, 달걀은 단백질과 비타민 B군에 속하는 비오틴 성분이 풍부해 탈모증, 지루성 피부염 등에 좋다. 머리카락 건강에 좋은 미네랄과 셀레늄 등이 함유된 아몬드, 땅콩 등의 견과류, 오메가 지방산과 비타민 B12와 철분이 포함된 연어 등도 도움이 된다.

전통적으로 탈모 치료에 사용되거나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진 많은 식물 추출물에서 활성 식물 화학물질을 추출하고 모발 성장을 촉진하고 탈모를 예방하기 위한 식물 추출물의 조절 표적을 찾으려는 연구도 계속되어 왔다. 특히 괄목할 만한 것은 2024년 하반기 기장밀추출복합물(Keranat™)(인정번호: 제2024-16호)이 최초 모발 건강 기능성을 인정받아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모발 상태(윤기, 탄력)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개별 인정형 원료로 고시되었다.

기장(학명: Panicum miliaceum L., 사용 부위: 씨앗)과 밀(학명: Triticum aestivum L., 사용 부위: 씨앗)을 각각 추출, 여과한 후 혼합한 원료로, 기능(지표) 성분 밀리아신(Miliacin)이 12.3mg/g, 글루코실세라마이드(Glucosylceramide)가 2.32mg/g 함유되어 있어야 하고, 일일 섭취량은 기장밀추출복합물(Keranat™)로서 300mg이다.

기장과 밀은 고대부터 여러 지역에서 주요 작물로 재배됐으며 다양한 영양소를 함유해 최근 항산화 및 항염증 효과에 중점을 두고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기장은 지질 과산화 활성 억제, 각질 세포의 대사 및 증식 촉진, 조직 수복 및 상처 치료 등의 효과가 있다. 밀에는 세라마이드가 풍부하며, 피부 장벽 유지, 수분 공급 촉진, 항염증 작용, 항균 작용 등의 효과가 있고, 식약처 ‘건강기능식품 기능성 원료 소비자 리포트’에 따르면 인체 적용 시험 및 동물 시험 등 기반 연구들을 종합 평가하여 기능성이 인정되었다. 인체 적용 시험에서 기장밀추출복합물(Keranat™)(300mg/일)을 91명(만 19~60세의 성인 남녀, 육안평가 분류법에 의한 윤기 점수가 1~3점이며 모발 손상 총점이 18점 미만)에게 24주간 섭취시킨 결과, 모발의 탄력, 윤기, 대상자 만족도(풍성도, 머릿결 등)가 대조군 대비 유의적으로 증가했다.

인류와 함께한 탈모 치료의 역사, 그리고 치료제 개발을 위한 많은 연구를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아직 완성하지 못한 탈모 치료의 역사가 기술 혁신과 함께 더 활발하게 발전하여 인류가 탈모로 우울해하지 않는 날이 곧 찾아오길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