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 이야기

문학소녀의 꿈을 이룬
글 쓰는 약사

은성약국 곽순애 약사*

1976년 낙원상가 주변 상가 건물 1층에 은성약국이 들어섰다. 종로에서는 조금 떨어져 있지만 안국역으로 이어지는 길이라 유동 인구가 적지 않다. 50년째 한곳에서 약국을 운영하며 문학소녀의 꿈을 펼쳐 온 곽순애 약사를 만났다.

편집실 사진 송인호, 윤선우 영상 김수현

창덕여고를 다니던 학창 시절, 곽순애 약사는 독서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문학소녀였다. 방송국에서 글 쓰는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을 품고 서울대 영문과에 지원했으나 낙방의 고배를 마시게 됐고, 친구의 권유로 우연히 동덕여대 약학과에 지원했다.

“약대는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친구가 원서나 넣어 보라고 해서 지원했다가 덜컥 합격한 거예요. 원래 영문과를 졸업하고 기자나 작가로 방송국에서 일하고 싶었는데 완전히 다른 길을 걷게된 거죠.”

약대에 입학했지만 꿈에 대한 미련이 커서인지 좀처럼 책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공부는 뒷전으로 미뤄두고 명동의 음악다방이나 포크송 가수의 라이브 공연을 찾아다녔고, 개봉하는 영화도 빠짐없이 챙겨 보며 대학 생활을 이어갔다. 좋아하지도 않는 수학을 계속 공부해야 하는 것도 싫었고, 일종의 현실 도피 같은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다 졸업반이 되자 덜컥 겁이 났다. 졸업을 못 하면 큰일이란 생각에 그때부터 마음을 다잡고 학교생활에 매진했고, 다행히 무사히 졸업하고 약사 면허 시험도 통과할 수 있었다.

“약사 면허 시험에 합격하고 나서 고려대학교병원 약제팀에서 몇 년간 근무했어요. 그러다 결혼하고 아이 낳고 얼마간 지내다가 은성약국을 오픈했죠. 대학 병원 약제팀에서 근무한 경험이 약국 운영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 문학소녀의 꿈을 펼쳐 온 약사

곽순애 약사는 약국을 운영해 나가면서도 문학소녀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 틈틈이 수필과 시를 썼고, 약사회 활동을 하며 관련 소식지에도 여러번 기고했다. 그렇게 조금씩 모은 글을 묶어 책으로 내기도 했고, 다른 문인들과 함께 책을 만들기도 했다.

“책 읽고 글 쓰는 생활을 계속 이어 나갔어요. 글 써 달라는 곳 있으면 마다하지 않았고요. 그러다 가 더 공부하고 싶어서 40살 되던 해에 명지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을 했어요. 그렇게 석사, 박사 과정을 밟았죠.”

약국을 운영하고 남매를 키우면서도 학문에 대한 열정으로 석·박사 과정을 마쳤고, 학부 문예창작과 겸임교수로 10년간 강단에도 섰다. 이 외에도 외국어 공부를 하기 위해 종로에 있는 영어학원에 아침 6시 수업을 들으러 다니기도 했고, 토요일 오후에는 일본어 학원도 다녔다. 곽 약사는 약국을 운영하면서 학업을 이어 온 모든 과정이 남편의 도움이 없었다면 해낼 수 없었을 거라고 한다.

“남편은 제가 뭘 하겠다고 하면 반대한 적이 없어요. 자신도 한의사로 대학교수로 바쁘게 살면서 제 대외 활동을 적극 지원해 줬고요. 석·박사 과정을 밟으면서 그만둘까 고민도 많이 했는데, 남편이 기왕 시작했으니 끝을 맺으라고 해서 마칠 수 있었죠. 지금은 약국에서 남편이 한약을 짓고 약국 일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존재

존재한다는 것 어떤 의미에서는 견딤이다.

의지할 곳도 전폭적인 신뢰도 완벽한 상호 이해도 상실한 존재의 지속함

이 밤이 가고 또다시 아침이 열리면 새로운 출발을 예고하는 지점에서 그럼에도 그 무엇인가에 의미를 부여하고 연연해하는 것은 왜일까.

존재한다는 것 어떤 의미에서는 떨림이다.

# 그래도 약국이 삶의 터전

서울시 약사회 대외 활동과 대학원 석·박사 과정, 대학 강의 등의 다양한 활동을 뒤로하고 이제는 약국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곽순애 약사는 대학 공부를 포기하지 않고 약사가 된 자신을 칭찬하고 싶다고 말한다. 당시에는 공부에 흥미를 못 느껴 관둬야 하나 고심도 했지만, 그 고비를 넘고 넘어 지금 약사로 사는 삶에 만족감을 표한다.

“80을 바라보는 이 나이에도 할 일이 있고 나를 찾는 사람이 있다는 게 참 보람차죠. 약국을 시작했을 당시 꼬맹이였던 주변 이웃의 아이들이 이제 중년이 돼서 약국이 아직도 있다며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도 참 반갑고요. 약국은 아이들 다 키우고, 우리 부부가 각자의 삶을 열심히 살 수 있게 해 준 든든한 삶의 터전이에요.”

아침 9시면 어김없이 약국 문을 열고 저녁 8시에 문을 닫는다는 곽순애 약사. 약국과 함께한 세월이 세월인 만큼 약국 운영은 그의 삶이자 생활이다. 주변에 병원이 없다 보니 처방전을 들고 오는 손님은 부쩍 줄었지만, 지금도 서울대병원이나 세브란스병원 처방전을 들고 부러 은성약국을 찾아오는 단골이 있다. 곽순애 약사를 믿고 오랜 시간 쌓인 신뢰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 지금도 하고 싶은 일이 있는 사람

곽순애 약사는 그동안 쓴 글을 모아서 책을 내는 것이 목표다. 여기저기 기고도 많이 했지만 자신의 글로만 구성한 책을 새로 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운동하다 척추를 다쳐서 병원에 입원해 있던 동안에도 병실에서 글을 썼어요. 혼자만의 시간이 있을 때 글이 참 잘 써지는 것 같아요. 그동안 쭉 쓴 글을 모아서 제 이름을 넣은 책을 만들고 싶어요. 부끄럽기도 하지만 그동안 쓴 글을 그냥 두기엔 아깝기도 해서요.”

약국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밝고 활기찬 일상을 만들어 가는 곽순애 약사는 지금도 하고 싶은 일이 많다. 평생 문학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은 그 에너지가 지금도 빛을 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