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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의 내성 바로알기

적극적으로 약물 치료를 해야 함에도 내성을 우려해 약 사용을 꺼리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내성은 ‘약을 여러 번 사용하면서 그 약에 대한 효과가 줄어드는 것’을 말하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여러 경우로 나뉩니다.

정희진 울산대학교병원 약제팀 약사

내성일까 아닐까?

약용량이 점점 증가하거나 다른 약이 추가된다면 내성이 생긴 것일까요? 우리가 흔히 오해하는 상황이 바로 이러한 경우입니다. 약의 투여방법이나 병의 치료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변화가 발생하는 것인데, 이를 내성 때문에 용량이 늘어나고 약이 추가된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처음부터 고용량을 투여할 시 심한 부작용이 예상되는 약이라면 낮은 용량으로 시작해 점점 용량을 높이는데요. 이런 경우를 환자가 약에 적응하는 기간이 필요한 약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환자는 처음엔 약효가 없다 하고, 시간이 지나면 왜 약용량이 계속 높아지냐고 합니다. 내성이 생긴 것 아니냐며 치료 용량까지 용량을 미처 다 올리기도 전에 치료를 포기해 버리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점점 약 종류가 늘어날 때도 내성으로 흔히 오인됩니다. 특히 당뇨병, 장기 이식 등 약을 장기간 사용해야 하는 상황에서 많이 발생합니다. 약 가짓수가 늘어나면 걱정부터 하는 분이 많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약으로 효과를 보려면 높은 용량을 처방해야 하는데, 이때 효과보다 부작용 위험이 더 커질 수 있습니다. 반면 여러 종류의 약을 낮은 용량으로 함께 사용하면 각 약의 부작용 가능성은 낮추며 기대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두 가지로 나뉘는 내성

내성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내 몸이 약에 적응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균이나 바이러스, 암세포가 약에 적응하는 것입니다.

내 몸이 약에 적응하는 것은 우리 몸이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려는 ‘항상성’ 때문입니다. 추위를 느끼면 몸을 떨어 체온을 높이고, 스트레스 상태에서는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게 되므로 식욕을 자극해 에너지를 채우는 것이 바로 항상성입니다. 그래서 우리 몸은 약으로 조절한 상태도 약을 쓰기 전으로 돌려놓으려 합니다.

처음에는 낮은 용량으로도 효과를 볼 수 있었지만 점점 그 용량으로는 효과가 없어집니다. 술을 처음 마실 때는 한 잔만 마셔도 취하던 사람이 음주 횟수가 늘어나면 점점 더 많은 양을 마셔야 취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입니다. 이때는 대개 약 용량을 올리면 해결되며, 한 가지 약으로 해결이 안 되면 다른 약을 추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언론에서 다루는 ‘약물 내성’은 ‘균이나 바이러스, 암세포가 약에 저항하는 것’을 말합니다. 약을 투여해도 균, 바이러스 암세포 등이 없어지거나 줄어들지 않는 것입니다. 균, 바이러스, 암세포 등이 약에 적응하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약이 자기 안으로 들어오면 밖으로 다시 뿜어내기도 하고, 약이 들어오는 통로를 막아 버리거나 약 자체를 분해하기도 합니다. 있는 힘껏 약에 저항하는 것입니다. 이 경우엔 약 용량을 올려도 해결되지 않고 아예 다른 약으로 바꿔야 합니다.

인류 생존을 위협하는 항생제

세계보건기구(WHO)는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10가지’ 중 하나로 항생제 내성을 꼽기도 했습니다. 개인의 몸 안에서 특정 약에 대해 저항하는 내성을 가지게 된 세균은 주위에 있는 균에 내성 유전자를 전달해 내성을 가진 균이 늘어나게 합니다. 항생제 내성균이 점차 늘어나는 것은 효과를 볼 수 있는 항생제가 줄어든다는 의미입니다. 이미 전 세계에서 매년 100만 명이 항생제 내성 때문에 사망하고 있으며 세계보건기구에서는 2050년에 이르면 1,000만 명이 사망할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항생제 복용은 끝까지

우리나라에서도 항생제 내성을 해결하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중입니다. 일례로 수년 전부터 ‘항생제 사용 관리 프로그램’ 운영을 통해 의료 기관에서 항생제를 균 특성에 맞게 잘 선택하였는지, 처방 일수와 용량은 적절했는지 등을 확인하며 항생제의 올바른 사용 관리를 유도하려고 힘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항생제 내성을 막기 위해서는 의료진뿐 아니라 환자의 노력도 필요합니다. 일단 약을 처방받은 환자는 그 처방을 믿고 끝까지 복용해야 합니다. 증상이 사라지면 항생제 복용을 임의 중단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면 살아남은 일부균은 약에 저항하는 방법을 배워 내성균이 될 수 있습니다.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내성균이 발생하지 않도록 항생제를 정해진 양과 기간 동안 모두 복용해 균을 남김없이 없애는 것입니다. 또한 같은 증상이라도 다른 균이 원인일 수 있으니 타인에게 항생제를 나눠 줘서도 안 됩니다.

임의대로 약용량 조절, 투여 중단은 금물

‘내성’으로 잘못 표현하는 상황들을 알아보았습니다. 약 복용 과정에서 많은 분이 우려하는 대부분의 경우는 이상 증상이 아닌 자연스러운 상황입니다. 약의 내성을 막기 위해 개인이 약용량을 임의로 줄이거나 복용을 중도에 그만두는 건 치료에 도움이 안 될뿐더러 오히려 그 과정에서 없던 내성이 생길 확률이 높아집니다. 그러니 처방 약 복용 시에는 혼자 판단해 조절하지 말고 걱정되는 상황이 있다면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