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붙여야 산다
패치 의료 시대
몸에 이상 증상이 있을 때 병원에서 검사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면
이제는 패치를 몸에 붙여 실시간으로 측정하고 기록한다. 파스처럼 몸에 붙여서 24시간 심전도를 체크하고,
혈당도 실시간으로 측정한다. 약도 먹거나 주사를 맞지 않고 붙여서 주입한다.
바야흐로 몸에 붙여서 진단하고 치료하는 ‘패치(patch) 의료’ 시대다.
글 김철중 조선일보 의학전문기자,
영상의학과 전문의
50대 후반 대기업 임원인 권씨는 왼쪽 팔뚝에 24시간 혈당 측정기를 붙이고 다닌다. 당뇨병 진단을 받고 혈당 관리를 철저히 하기 위해서다. 연속 혈당 측정기(CGM)는 피부 표면에 부착한 센서를 통해 당 수치를 실시간으로 측정한다. 혈당 수치는 스마트폰에 표시된다. 기존에는 혈당이 궁금할 때마다 손가락 끝을 미세 바늘로 찔러 피를 낸 뒤 핏방울을 검사지에 묻혀 쟀다. 사실상 24시간 혈당 변화를 알기가 어렵다.
혈당 측정기를 몸에 붙이면 음식을 섭취할 때마다 바로 혈당 수치를 알 수 있다. 무엇을 어떻게 먹을 때 혈당이 가파르게 오르는지 알 수 있고, 반대로 저혈당도 즉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혈당이 가파르게 오르면 이를 대사하는 인슐린 수요가 갑자기 늘어나 인슐린을 만드는 췌장이 지친다. 당뇨병이 악화될 수 있다는 의미다. 고혈당 상태는 마치 가시 달린 구슬(고혈당)이 혈관 내피를 갉아먹는 것과 같다. 따라서 식사를 하고 나서 혈당이 정상 범위 내에서 천천히 올랐다가 천천히 내려오는 게 좋다.
어찌 됐건 혈당이 빠른 시간에 200mg/dL 이상 오르는 혈당 스파이크를 피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무엇을 어떻게 먹을 때 즉각적으로 혈당이 얼마나 오르는지 사실상 알기가 어려웠다. 권씨는 혈당 측정기를 붙이고 다니면서 평소 즐겨 먹던 콩국수가 의외로 혈당을 크게 올린다는 것을 알게 됐다. 식당 주인에게 물으니, 콩국수에 설탕을 넣는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당뇨병에 좋다는 건강식품 가루도 혈당을 올리기는 마찬가지였다.
당뇨병 관리에도 획기적
내분비내과 전문의들은 24시간 연속으로 혈당을 측정하면, 같은 음식을 먹어도 사람마다 시간마다 혈당이 올라가는 게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어 개인 맞춤형 식단을 짤 수 있다고 말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혈당을 빨리 올리는 탄수화물인 밥을 먹지 않고 스테이크를 먹었는데, 되레 혈당이 크게 올라가는 경우가 있었다. 그 사람에게 고기 대신 탄수화물과 채소를 섞은 음식을 주니 혈당이 떨어졌다.
이처럼 실시간으로 혈당 수치를 알 수 있는 연속혈당측정기가 혈당 관리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꾸고 있다. 무엇을 먹을 때 혈당이 많이 오르는지 빨리 알게 되면서 혈당 관리에 최적인 음식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종전 혈당 측정 방식이 남산에 올라가 보던 풍경이라면 연속 측정은 대동여지도를 펼쳐 보게 된 것과 같다.
의료진은 실시간 혈당 측정기의 등장으로 당뇨관리를 위해서는 어떤 음식을 피해야 하고, 식후 운동을 하면 혈당이 얼마나 떨어지는지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어 체계적이고 정밀한 관리가 가능해졌다고 좋아한다. 어떤 음식을 피해야 하는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환자 교육이 간편해졌다는 것이다. 채혈 방식의 종전 자가 혈당 측정기는 보통 하루 2~4회 측정이 전부이다 보니 이런 효과를 얻기 어려웠다. 몸에 부착하는 연속 혈당 측정기는 소아당뇨(제1형 당뇨) 환자에 한해 건강보험이 적용돼 70%까지 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다.

최장 11일 붙이는 심전도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60대 초반 최씨는 최근 부정맥 진단을 겨우 받았다. 몸에 붙이는 패치형 심전도 검사기 덕이다. 갑자기 불안 증세가 오며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는 부정맥 증세가 있었지만, 병원에 가면 심장박동이 진정돼 심전도를 검사해도 정상으로 나왔다. 그래서 공황장애가 아닐까 하는 오해도 받았다. 부정맥은 발생 당시 심전도를 봐야 정확한 진단이 가능하다. 심전도 기기를 허리춤에 부착하고 지속적으로 심전도를 기록하는 홀터 검사가 있지만, 불편한 데다 부정맥을 찾아낼 확률이 50%가 안 된다.v
이에 최씨는 패치형 심전도 검사기를 가슴에 붙였다. 국내 기술로 개발된 ‘에이티패치’는 최장 11일 동안 가슴에 붙여서 심전도검사를 할 수 있다. 별도의 충전이나 배터리 교체가 필요 없고 일상생활을 하면서 연속으로 심전도 측정이 가능하다. 심전도 자료는 무선 와이파이 기술을 통해 환자의 스마트폰으로 전송돼 기록된다. 이는 병원 진단 센터로도 전송된다. 최씨는 이 방법으로 결국 부정맥 진단을 받았고, 현재는 약물 치료를 받으며 관리하고 있다.
붙여야 사는 시대
치매 환자들은 제시간에 약 먹는 것조차 잊을 수 있다. 이에 치매 약물을 패치에 담아 몸에 붙여서 치료하기도 한다. 약물이 담긴 마이크로 바늘 수십 개를 패치에 담아 붙이면, 피부를 통해 약물이 들어가는 방식이다. 하루에 한 번 등이나 배에 붙여 주면 24시간 동안 약물이 일정한 농도로 지속적으로 들어간다. 한 번 먹는 약물보다 메스꺼움이 적다는 평가다. 현재 대표적인 치매 약제인 아리셉트와 엑셀론이 패치형으로 출시되었다. 조현병 환자도 증상이 심할 경우 규칙적으로 약물을 복용하기가 힘들 수 있다. 미국에서 세쿠아도라는 붙이는 조현병 치료제가 개발돼 2019년부터 시판되고 있다. 하루 한 번 붙이는 방식인데, 국내에 조만간 도입될 것으로 보인다.
패치형은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증후군(ADHD)약물에도 개발되고 있고, 고령 남성에게 흔한 전립선 비대증 치료에도 활용될 전망이다. 신경이 손상돼 극심한 통증을 겪는 환자들은 강력한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 패치를 붙인다. 한 장으로 3일간 사용할 수 있어 통증 관리에 편하다.
앞으로는 이처럼 상당수 약물이 붙이는 패치형으로 바뀔 전망이다. 특히 매일 약물을 복용해야 하는 만성질환자나 고령자들에게 필요한 약물 전달 시스템이다. 당뇨병, 부정맥, 만성질환 등을 치료하려면 이제 붙여야 사는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