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중앙동의
건강지킴이
모범약국
배석환 약사*
45년의 시간을 아픈 사람들을 낫게 하고 그들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며 살아온 배석환 약사. 탄광촌에서 시작해 지금은 고향인 제천의 오래된 약국으로 남아 세월만큼 쌓인 정을 이웃과 나누고 있다.
글 편집실 사진 백기광, 송인호 영상 김수현
# 화학을 좋아하던 청년
제천 중앙로 중앙공원 근처에 자리한 모범약국은 사거리에 가장 먼저 생긴 약국이다. 1986년 9월부터 39년째 한자리에서 제천시민의 건강지킴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제천고등학교를 졸업한 배석환 약사는 화학과와 약대 진학을 두고 고민할 정도로 화학을 좋아했지만, 형편이 넉넉지 않은 집안을 일으켜야 했기에 결국 약대를 선택했다.
“빠듯한 살림이라 제가 얼른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약대를 선택했지요. 대구에 있는 영남대학교 약대에 합격해서 자취하면서 공부를 했어요. 부모님이 대학 등록금에 생활비까지 보내 주실 형편은 아니어서 1년 다니다 휴학하고 등록금 벌고 그랬어요. 입주 과외도 하고, 건설 현장에서 막일도 했고요.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어요. 어렵게 대학을 마쳤죠.”
대학 공부와 36개월 군대 생활까지 합쳐서 8년을 고생한 끝에 약사가 된 배 약사는 연고도 없던 강원도 원주에 약국을 차렸다. 자본이 없으니 비교적 초기 비용이 적게 드는 소도시에서 시작했고, 이후 종잣돈을 모아 탄광이 있는 태백에 다시 약국을 차렸다. 탄광 경기가 좋을 때여서 빨리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고자 한 선택이었다.
“그때 태백은 지금보다 인구가 세 배쯤 많았고 탄광 경기가 좋았으니 단기간에 돈을 모을 수 있었어요. 일종의 사명감 같은 것도 느꼈죠. 그곳 주민들 대부분이 탄광에서 일하다 보니 호흡기 질환자가 많았거든요. 병원이 멀고 약국도 몇 개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형편이 어려운 환자는 외상으로 약을 지어 드리고 급여가 나오면 받는 식으로도 했죠. 정말 힘든 분들에게는 그냥 지어드리기도 했고요.”
# 고향에서 다시 시작한 약국
6년 동안 열심히 약국을 운영하며 자신만의 조제 노하우도 생기고 운영에도 탄력이 붙은 배 약사는 치열하게 보낸 시간을 뒤로하고 가족과 친구가 있는 고향 제천으로 돌아왔다.
“정신없이 바쁘게 살다가 고향으로 돌아오니 마음이 참 편하더군요. 약국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었고요. 여유가 생겼으니 평소 하고 싶던 취미 생활도 시작했습니다. 등산, 서예, 낚시, 사냥, 사진 등 이것저것 했어요.”
배 약사가 취미 생활 중에 가장 열심히 활동한 분야는 바로 등산이다. 유명한 산악인 허영호, 최종열 씨를 후원하는가 하면, 한동안 제천산악회 회장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한창때는 산악회 회원이 40~50명 가까이 돼 해외 원정도 다니고 했지만, 배 약사는 약국을 운영해야 했기에 2~3주가량 자리를 비워야 하는 일정은 같이하지 못했다. 대신 국내 산행은 안다녀 본 곳이 없을 정도로 열심이었다고. 이제는 신규 회원이 없어 산악회가 유명무실해진 것이 아쉽지만 월 1회 정규 산행은 지금도 지켜지고 있다.
“산악회 회원으로도 오래 활동했지만 사진 촬영도 많이 다녔어요. 주로 야생화나 자연 풍경을 찍었고, 함께 간 아내를 카메라에 담기도 했고요. 시간 날 때마다 서예도 했는데, 그동안 쓴 것들을 모아서 작은 전시회를 열기도 했어요. 약국을 운영하면서 틈나는 대로 좋아하는 일들을 찾아서 하다 보니 일상에서 쌓인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생활에 활력이 생기더군요.”
# 제2의 인생은 조금 여유롭게
매일 오전 8시 반에 문을 열어 저녁 7시에 닫고, 토요일은 오후 1시까지 약국을 운영하는 배 약사는 75세가 되면 약국을 그만둘 계획이라고 한다. 매일 약국을 지켜야 하는 약사라는 직업에서 벗어나 1년 정도는 자유롭게 지내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약국을 그만두면 아내 손 잡고 여행도 다니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면서 자유로운 생활을 해 보고 싶어요. 그러다 노는 생활이 지루해지면 제약 회사 취업에 도전해 볼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제천 주변에 제약 회사 연구소가 꽤 있거든요. 매일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면 더 좋을 것 같고, 봉사 활동도 알아보고 싶어요.”
70대 중반의 나이에도 건강한 일상을 유지하는 비결을 물으니 ‘산행’을 꼽는다. 일주일에 세 번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아내와 산행을 간다는 배약사는 등산은 건강을 유지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는 운동이라고 강조한다.
“같이 등산을 하는 분이 일고여덟 정도 있습니다. 맑은 공기도 쐬고 스트레칭도 하면 몸과 마음이 가벼워져요. 하산해서 간단하게 아침 식사 후 약국으로 출근하면 하루를 기분 좋게 시작할 수 있지요.”
40여 년간 약사로 일하며 이웃들의 건강을 살피고 아픈 사람을 낫게 할 수 있었기에 만족스러운 인생을 살았노라 말하는 배석환 약사. 긴 세월을 함께 보낸 이웃이 어디가 아픈지 어떤 생활 습관을 가졌는지 알기에 때로는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삶에 감사하고 이후에도 자신이 가진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곳에서 영원한 약사로 살고 싶다는 바람을 전하는 그의 앞날을 응원한다.
- 배석환 약사의 사진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