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가하는 부정맥의
새로운 표준 치료
펄스장 절제술
최근 전 세계의 주요 대학 병원이 부정맥 치료를 위해 펄스장 절제술 장비를 앞다투어 도입하고 있다.
고령 인구 증가에 따라 부정맥 환자가 급증하고 있어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펄스장 절제술이 부상한 것이다.
펄스장 절제술이란 무엇인지 알아보자.
글 김철중 조선일보 의학전문기자,
영상의학과 전문의
심장은 전자 기기다. 심장 박동의 원리가 그렇다. 심장 상단에서 전기 스파크가 규칙적으로 일어나면, 전기 신호가 심장 근육 속 전선(電線)을 따라 아래로 퍼져 나가면서 심방과 심실이 일정한 속도로 박동하게 된다. 가만히 있을 때 박동 수는 1분에 60~90회가 정상이다. 하지만 전기 스파크를 만드는 중앙 발전소에 문제가 생겼거나 지방 발전소가 군데군데 생겨 중구난방으로 전기 스파크가 일어나면, 심장 박동이 불규칙적으로 널뛰게 된다. 이런 상태가 바로 부정맥이다.
나이가 들수록 부정맥은 증가한다. 연식이 오래된 자동차에서 엔진 고장이 잦듯이 사람도 나이가 들면 심장 전기 장치에 잔고장이 는다. 부정맥이 그 결과이고, 그중에서도 가장 흔한 것이 심방세동이다. 폐에서 산소가 입혀진 신선한 혈액을 받아서 좌심실에 보내어 전신으로 돌게 하는 좌심방이 비정상적으로 불규칙하게 뛰는 상태를 말한다. 피가 심방에 머물러 맴돌다 보니 피가 죽처럼 굳는 혈전이 생기고, 이것이 심장 밖으로 흘러나와 뇌혈관을 막으면 뇌경색이 발생한다.
부정맥이 초고령사회에서 얼마나 흔하게 발생하는지는 다른 질병 발생률과 비교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대한심장학회 부정맥연구회의 조사에 따르면 부정맥은 65세 이상에서 3~5%, 80세 이상에서 10%가량 발견된다. 아직까지 부정맥에 대한 인식이 낮아 진단받지 않고 지내는 환자 수를 감안하면 국내에 최대 100만 명의 환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부정맥 발병 위험률은 남성에서는 암 발생 1위인 위암보다 10배 높고, 여성에서는 유방암보다 8배 높다. 고령 인구에서 부정맥 발생률은 치매를 앞지른다.
고주파 절제술과 냉동 절제술
한순간에 소중한 생명을 앗아가는 부정맥을 근본적으로 치료하려면 부정맥을 발생시키는 지방 발전소를 없애야 한다. 그래서 나온 것이 고주파 절제술(RF Ablation) 또는 냉동 절제술(Cryoablation)이다. 고주파 절제술은 환자의 사타구니 옆 혈관을 뚫고 그곳에 작은 도관(카테터)을 집어넣어 심장 쪽으로 올린 후, 부정맥 발생 부위에 전극을 갖다 대고 고주파를 쏘는 방식이다. 열로 심장 조직을 태워서 비정상적인 전기신호를 차단하는 원리다. 냉동 절제술은 반대로 냉각을 통해 심장 조직을 동결해 치료한다.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수천만 건의 시술이 이뤄지면서 부정맥을 치료하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단점도 있다. 부정맥 범위가 클 때 대규모 절제가 어렵고, 자칫 심장 벽에 구멍이 날 수 있으며, 열이 주변 조직을 손상할 수 있고, 기술 적용 복잡도가 커서 시술 시간이 길다는 점이다.
안전성 확보하고 부작용 줄인
펄스장 절제술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자 최근 나온 것이 펄스장 절제술(Pulsed Field Ablation)이다. 고전압의 짧은 전기 펄스가 세포막에 전기 공극을 생성하여 세포를 죽이는 원리로, 지져서 없애고자 하는 조직에 대해 선택적 파괴가 가능하다. 비정상 전기 신호가 발생되는 부위에 전기 펄스가 전달되면 열 자극 없이 비정상 전기 신호가 차단된다.
기존 두 방법은 식도나 횡격막, 신경 등 심근 조직 이외 조직에 열 에너지가 전달돼 조직이 손상될 우려가 있는 반면, 펄스장은 심근 세포에만 선택적으로 작용해 혈관, 신경 등 인접 정상 조직에 손상을 주지 않는다. 열 손상이 발생하지 않으니 심장 외막 및 식도 등 주변 구조물이 안전하다. 이는 고주파 절제술과 냉동 절제술의 주요 부작용을 해결한 것이며, 또한 절제 시간이 짧아 전반적인 시술 시간이 1시간 정도로 단축된다. 시술 후 회복 시간이 짧아지고, 입원 기간도 줄어드는 장점도 있다.
심장내과 의사들이 펄스장 절제술에 열광하는 이유는 초고령사회로 접어들며 급증하는 심방세동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놓을 혁신적인 기술로 보기 때문이다. 열 손상 없이 선택적으로 심근 세포만 파괴할 수 있다는 점이 의사들의 걱정거리를 크게 덜어 주었다.
전 세계적으로 12만 건 이상 시술
펄스장 절제술은 지난 2024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 허가를 받았고 현재 미국과 유럽, 일본 등에서 심방세동 치료에 적극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하버드 의대 부속 병원, 클리블랜드 클리닉, 마운트 시나이 병원 등 주요 병원에 도입됐으며 관련 임상 연구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유럽에서도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여러 병원에서 펄스장 절제술을 활용한 심방세동 치료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이 치료 방법을 개발한 보스턴 사이엔티픽은 부정맥 치료 분야 매출이 전년 대비 122% 증가했다. 전 세계적으로 벌써 12만 건 이상 시행됐을 만큼 안전성을 인정받고 있으며, 최근에는 3차원 영상 기술을 활용해 실시간으로 펄스장을 쏘는 카테터 위치를 확인하고 정확하게 절제할 수 있는 3차원 방식도 등장했다.
다른 부정맥 질환에도 확대 적용
펄스장 절제술의 미래는 밝아 보인다. 다른 부정맥 질환에의 적용 가능성도 점차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적용 예상 질환은 심실이 갑자기 빨리 뛰는 심실빈맥이다. 기존의 심실빈맥치료법인 고주파 절제는 심실 조직에 깊게 도달해야 효과적인데, 이 과정에서 관상 동맥, 심장막 손상 위험이 존재해 수술이 까다로웠다. 심실 근육도 펄스장 절제술 원리인 전기 천공으로 표적화가 가능하기에, 비근육성 조직을 보호할 수 있는 펄스장 절제술이 곧 적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고령의 부정맥 환자가 큰 폭으로 증가세인 요즘 상황에서는 부정맥 치료를 할 때 식도나 혈관 등 비근육 조직 보호가 중요하며, 짧은 시술 시간과 빠른 회복도 필요하다. 초고령사회를 맞아 그러한 수요에 부합하는 펄스장 절제술이 부정맥 치료의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