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 이야기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 약국

대도약국 김정애 약사*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많은 것이 변했지만, 충무로 한 길모퉁이에 위치한 대도약국은 47년째 한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픈 사람을 도우며 사회에 보탬이 되고 싶던 소녀는 약사가 되었고, 오늘도 그때의 바람을 실천하며 따뜻한 마음을 전하고 있다.

편집실 사진 송인호, 윤선우 영상 김수현

# 대도약국의 주인이 된 1978년

1971년 약대 졸업과 동시에 당시 혜화동에 있던 고대 부속 병원에서 인턴 약사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김정애 약사. 서울 소재 여덟 개 약대에서 한 명씩 추천받아 채용된 약사 중 한 명이었다. 김 약사는 입원, 외래, 응급 환자의 약을 조제하며 수년간 병원에서 근무하다 이종사촌이 운영하던 대도약국을 인수받았다.

“1978년 4월 1일부터 제 이름을 걸고 약국을 시작했어요. 원래 이종사촌 오빠가 운영하던 약국이었는데 이민을 가시게 되면서 저한테 약국 운영을 권하셨죠. 얼떨결에 인수해서 대도약국의 주인이 되긴 했는데, 막상 약국을 운영하려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대형 약국의 관리 약사로 일한 경험이 있는 친구가 보름 정도 와서 도와줬어요. 조제약은 병원에서 경험이 많았기에 어렵지 않게 조제할 수 있었고요.”

지금은 충무로역과 고층 빌딩이 즐비한 번화가지만, 약국을 시작할 당시는 주변에 유흥 주점이 많았기에 간장약과 소화제 등을 찾는 사람이 주로 많았다. 80년대에 접어들며 인쇄소가 하나둘 생기다 지금의 인쇄소 거리가 조성됐고, 그렇게 김 약사는 47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충무로의 변화를 몸소 느끼며 약국을 운영해 왔다.

# 약사가 되라는 아버지의 말씀

“아버지 친구분 따님 중에 약대 나온 분이 있었어요. 어느 날 아버지께서 그 따님이 개업한 약국에 다녀오시더니 ‘약국에 가 보니 참 좋아 보이더라. 너도 나중에 약대에 진학하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또 제가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병원에 자주 다니셨어요. 어머니 친구분이 간호사로 계시는 병원이었는데 친절하고 전문적으로 어머니를 케어해 주시는 모습이 참 멋있어 보였습니다. 나도 나중에 간호사 선생님이 되어서 어머니 병을 낫게 해 드리고 싶다는 생각도 했죠.”

간호대 진학을 고민하기도 했지만, 아버지의 바람대로 동덕여대 약대에 진학한 김정애 약사는 돌이켜보면 약사가 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지금처럼 독립적으로 약국을 운영하며 오랫동안 일할 수 있다는 것이 약사의 가장 큰 장점이라는 생각에서다.

“당시에는 여성의 대학 진학이 흔하지 않았지만, 저희 부모님께서는 항상 ‘공부해서 사회 활동을 하라’고 독려해 주셨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들은 부모님 말씀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머니는 저에게 유학을 권하기도 하셨고, 언제나 더 넓은 세상에서 공부하고 경험을 많이 쌓으라고 하셨어요. 지금은 두 분 다 제 곁에 안계시지만 부모님께 마음속으로 늘 감사 인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 중구여약사회 활동으로 보낸 시간들

김정애 약사는 약국 운영에 탄력도 붙고 약사로서 경험도 쌓은 40대에 들어서서는 중구여약사회 위원장을 맡게 됐다. 매년 자선다과회를 개최해 기금을 마련, 다양한 봉사활동에 참여하며 활발하게 활동했다. 취약 계층 복약 지도, 장학사업, 불우 아동과 노인 복지관, 다문화가정 지원 등에 참여하며 사랑과 헌신의 봉사 정신을 실천했다.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을 비롯해 취약 계층 이웃들의 건강 상담과 복약 지도를 하러 많이 다녔어요. 좋지 못한 환경에서 영양 섭취도 제대로 안되고 여기저기 아파서 여러 가지 약을 드시는 분들이 많아 조금이나마 도움을 드리려고 했습니다.”

각종 봉사활동을 통해 건강 캠페인 등을 주도하는 중구여약사회는 80년대부터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힘을 모아왔다. 김 약사는 중구여약사회활동을 하며 약사로서 더없이 뿌듯하고 행복했다고 회상한다. 지금도 약사회 회원들과 산행도 하고 탁구도 치며 동료애를 느끼고,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 주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더없이 고맙다고.

# 공부하고 운동하는 건강한 약사

명동이 가까운 충무로에 있다 보니 외국인도 심심찮게 약국을 찾아온다. 최근에는 한국 약을 사 가기 위해 약국 방문을 여행 코스에 넣기도 해 외국인 방문이 더 잦다. 외국인과 거리낌없이 대화를 주고받는 김정애 약사는 요즘 영어 회화공부에도 열심이다. 영어책을 책상 한편에 놓아두고 시간 날 때마다 펼쳐 본다.

“가끔 국립중앙도서관에 가서 강의도 듣고 책 읽는 걸 즐겨요. 방금 읽은 것도 돌아서면 잊어버릴때도 있지만 그래도 새로운 것을 알고 배우는 시간이 참 좋아요. 언젠가 약국을 그만두면 국립중앙도서관에서 하루 종일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저녁 8시에 약국 문을 닫고 향하는 곳은 집 근처 헬스장이다. 그곳에서 ‘헬스엄마’들과 함께 운동하며 수다를 즐기다 보면 어느덧 밤 10시가 된다. 아침 9시부터 시작된 분주한 일상을 마무리하는 시간이면 하루를 온전히 보낼 수 있었음에 감사한 마음이 샘솟는다고.

“점점 나이가 드니 이제 약국을 그만둘 때가 됐나 싶기도 하지만 매일 사람들을 만나 웃으며 이야기하고, 복약 지도를 하고, 공부도 하며 지내는 시간이 즐겁습니다. 대도약국을 47년째 지키고 있는 원동력이기도 하죠. 아직도 약국을 하냐며 반갑게 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분들, 지나가다 무심코 들르시는 분들 모두 제겐 참 소중합니다. 약국은 저의 인생이기 때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