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지키는
5가지 질문
글 전민영 연세대학교
용인세브란스병원 신경과 교수
기억, 언어, 판단력 등의 여러 영역의 인지기능에 문제가 생겨 일상생활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증후군을 치매라고 한다. 치매는 알츠하이머병이라 불리는 노인성 치매나 중풍 등으로 인해 생기는 혈관성 치매처럼 다양한 원인에 의해 발생한다. 치매의 증상과 진단, 치료 및 예방법까지 알아보자.
사랑하는 사람과의 소중한 기억이 서서히 희미해지고, 하루하루의 일상을 스스로 보내기조차 어려워지는 질환. 그래서 치매는 흔히 ‘세상에서 가장 슬픈 병’으로 불린다. 치매는 환자뿐 아니라 가족들에게도 큰 심리적 고통과 경제적 부담으로 다가온다. 2023년 치매역학조사 및 실태조사(보건복지부·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실제로 치매 환자 가족의 절반에 가까운 45.8%는 돌봄 부담을 느끼고 있으며, 1인당 연간 관리 비용은 약 2,700만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나와 가족의 삶을 무너뜨리는 치매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치매의 전조 증상은 무엇인지, 어떻게 막을 수 있는지 5가지 핵심 질문을 통해 알아본다.
자꾸 깜빡깜빡하는데, 치매 증상인가요?
단순 건망증과 치매는 분명히 다르다. 건망증은 하려던 일을 깜빡하거나 말하려던 단어를 잊어버려도, 시간이 조금 지나면 생각나거나 작은 힌트로 다시 떠올릴 수 있다. 반면 치매는 기억 자체가 사라져 어떤 단서로도 떠올려내는 것이 어려워지고 같은 질문을 반복하는 등의 행동으로 나타난다. 또한 건망증은 시간이 지나도 증상이 크게 변하지 않지만, 치매는 점차 악화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차이점이 있다. 만약 기억력이 점점 저하되고 일상생활에도 문제가 생겨 치매가 염려된다면 조기에 전문가의 진단을 받아보는것이 좋다.
치매 의심증상 10가지
① 직업이나 일상생활에 영향을 줄 정도로
최근 일에 대해 기억이 없어졌다.
② 익숙한 일을 처리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③ 적절한 낱말을 구사하지 못하는 등
언어사용이 어려워졌다.
④ 익숙한 장소에서 어디인지 파악하지
못하거나 시간을 혼동한다.
⑤ 판단력이 감소하거나 그릇된 판단을
자주한다.
⑥ 추상적인 사고 능력에 문제가 생긴다.
⑦ 중요한 물건을 엉뚱한 곳에 두는 등
물건 간수를 잘 못한다.
⑧ 이전과 비교해 감정 상태가 다르고
행동의 변화가 있다.
⑨ 예전과는 다른 성격 변화가 있다.
⑩ 매사에 수동적으로 바뀌며 자발성이
감소한다.
참고: 중앙치매센터
치매에 이르기 전 진단하는 방법도 있나요?
건망증과 치매 사이에는 ‘경도인지장애(Mild Cognitive Impairment, MCI)’라는 단계가 있다. 2024년 중앙치매센터 보고에 따르면, 경도인지장애는 2025년에 298만 명(유병률 28.1%), 2040년에 이르면 500만 명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도인지장애는 기억력 등 인지 기능이 저하됐지만 일상생활에는 큰 문제가 없는 상태다. 아직 치매로까지 이어지지 않은 치매 전단계지만, 매년 약 10~15%는 치매로 진행될 수 있기 때문에 안심할 수는 없다. 경도인지장애는 운동, 식습관, 수면, 인지 활동 등 생활습관 개선을 통해 증상의 악화나 치매로의 진행을 늦출 수 있으므로, 가능한 한 이른 시기부터 관리하는것이 중요하다.
알츠하이머병은 치매와 같은 병인가요?
알츠하이머병은 베타아밀로이드와 타우 단백질이 뇌에 과도하게 축적되면서 인지 기능이 점차 악화하는 대표적인 퇴행성 뇌 질환이다. 반면 치매는 기억력, 언어능력, 시공간능력, 판단력 등 다양한 인지 기능이 서서히 저하되면서 일상생활에 문제가 생기는 질환들을 통틀어 일컫는다.
알츠하이머병은 치매의 수많은 원인 중 하나이며, 유병률이 치매의 다른 원인 질환보다 높기때문에 흔히 치매와 동일시된다. 그러나 치매의 원인 질환은 알츠하이머병, 혈관성 치매, 루이체치매, 전두측두 치매, 뇌수두증, 감염성 질환 등 다양하다. 원인에 따라 치료 방법이 달라질 수 있어 혈액검사, 뇌 영상 검사, 인지 기능 검사, 아밀로이드 핵의학 검사 등 다각적인 평가가 필요하다.
알츠하이머병은 어떻게 치료하나요?
아쉽게도 알츠하이머병을 완치하는 치료제는 아직 없는 실정이다. 지금까지는 인지 저하를 늦추거나 치매로 인한 행동·심리 증상을 조절하는 치료가 최선이었다. 경구제로는 도네페질, 리바스티그민, 갈란타민, 메만틴 등이 사용되며, 병의 진행 속도를 늦추는 데 도움을 준다.
최근 알츠하이머병 신약이 개발되어 크게 주목받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레카네맙(Lecanemab), 도나네맙(Donanemab)등은 뇌 속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을 제거하는 항체 치료제로, 기존 약보다 근본적 접근으로 병의 진행을 지연하는 데 유의미한 효과를 보였다. 레카네맙은 국내에도 도입되어 알츠하이머병 초기 환자들에게 투약되고 있다. 다만 이러한 항체 치료제는 모든 치매가 아닌 알츠하이머병으로 확진된 사람에게만 투약할 수 있고, 초기 단계에서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투약으로 인한 부작용(뇌부종, 뇌출혈) 발생의 우려도 있기 때문에 전문가의 판단과 모니터링을 통해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
인지 건강을 유지·개선하려면 어떤 생활습관이 필요할까요?
건강한 뇌는 건강한 일상에서 만들어진다. 핀란드에서 진행된 ‘핑거 스터디(FINGER study)’는 인지 저하와 치매 예방을 다룬 대표적인 연구로, 생활습관 개선으로 치매 고위험군의 인지 저하를 예방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국내에서도 한국형 인지 훈련 프로그램인 ‘슈퍼브레인’ 등이 개발되어 적용 중이다. 이러한 연구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뇌 건강 관리법은 다음과 같다.
운동
일주일에 150분 이상의 빠른 걷기, 수영, 자전거 등 유산소 운동은 뇌 혈류를 증가시키고 신경세포 생존에 도움을 준다. 하루 만 보 걷기도 기억력 유지에 효과가 있다.
식단 관리
채소, 생선, 견과류, 올리브유 등 지중해식 식단은 인지 기능 보호에 효과적이다. 반대로 과도한 당, 트랜스지방, 붉은 고기 등은 줄이는 것을 권장한다.
인지활동, 두뇌활동
책 읽기, 일기 쓰기, 노래 부르기, 악기 연주, 컴퓨터 배우기 등 새로운 취미는 뇌를 자극하고 인지 기능을 활성화한다. 종교활동이나 자원봉사를 비롯해 가족, 친구, 이웃과 교류할 수 있는 사회활동도 자주 하면 더욱 좋다.
이 외에 혈압, 당뇨, 고지혈증 등을 꾸준히 관리하고 우울감을 조절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다른 여러 질환과 마찬가지로 금주와 금연은 기본이자 필수라는 점을 잊지 말자.
이제는 뇌도 관리하는 시대다. 치매를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예방과 조기 진단이 중요하다. 건강한 생활습관을 유지하고, 정기적인 검진을 받으며, 전문가와도 상담하여 일찍 대응할수록 좋다. 지금 내딛는 한 걸음이 미래의 나를 지키는 가장 큰 선물이 될 수 있다. 오늘부터 뇌를 위한 작은 변화를 하나씩 실천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