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 물리가 만나 이룬 성과
중입자 치료
‘암에 걸리면 죽는다’는 말도 옛말이 되어가지만 치료 과정은 여전히 고통스럽다.
방사선과 화학적 항암 치료가 결코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등장한 중입자 치료는 환자의 고통을 훨씬 가볍게 덜어주는 치료다.
의학과 물리가 만나 꿈의 암 치료법을 만들어냈다.
글 김철중 조선일보 의학전문기자
셋 중 하나가 암에 걸리는 세상이라지만 암은 여전히 공포의 대상이다. 아무리 생존율이 높아졌다 하더라도 폐암, 췌장암, 전이성 암 등은 생존하는 경우보다 세상을 뜨는 경우가 더 많다. 생존하더라도 암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큰 고통을 겪는다.
제거가 까다로운 암이 있을 때 가장 좋은 치료는 암 부위만 귀신같이 제거하고 나머지 정상 조직은 놔두는 것일 게다. 그렇게만 된다면 꿈의 암치료라 불릴 만하다. 의학계는 현대 기술로 그것에 가장 가까이 도달한 방법이 ‘중입자 치료’라고 평한다.
암에 닿으면 에너지를 폭발시키는 원리
중입자 치료를 이해하려면 약간의 물리학 지식이 필요하다. 암세포에 방사선을 쏘면 세포핵의 DNA가 손상된다. 암은 끊임없이 세포를 분열해 성장하는 질환인데, DNA가 손상되면 세포 분열을 할 수 없어 암이 자연스레 사멸된다. 암 덩어리에 방사선 치료를 하는 원리이자 이유다.
그러나 방사선을 암세포에만 쏠 수 없기에 암 덩어리 옆의 정상 세포도 방사선에 노출되고 결국 죽게 된다. 이런 위험을 피하려고 암세포에만 좁게 방사선을 쏘다 보면, 변두리 암세포는 방사선을 덜 받아 살아남는다. 이는 암 치료 후 재발의 원인이 된다. 정상 세포의 희생을 감내하고 암 주변을 포함하여 광범위하게 방사선을 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방사선은 몸 밖에서 쏘기에 방사선이 암까지 도달하면서 통과하는 조직이나 장기도 피해를 입는다. 예를 들어 췌장암의 경우, 밖에서 쏘는 방사선은 위장과 소장을 통과하여 췌장암에 닿는다. 이 과정에서 방사선이 통과한 자리의 정상세포도 죽을 수 있다. 몸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암세포를 죽이려고 방사선을 세게 쏘면 쏠수록 희생도 커진다. 때로는 그러한 희생 때문에 암 치료를 중단하는 일도 벌어진다.
즉 이상적인 암 치료 방법은 방사선이 암 덩어리까지는 약한 상태로 통과하고, 암 덩어리에 닿으면 그때 순간적으로 에너지를 폭발시켜 암세포만 섬멸하는 것이다. 이것이 중입자 치료의 기본 원리다. 군사 무기로 치면 소리 소문 없이 조용히 날아가 타깃만 때리는 스커드 미사일 같다고 볼 수 있다.
현재 효율성이 가장 높은 암 치료법
중입자 치료는 탄소 이온을 가속시켜 만들기에 카본(carbon·탄소) 이온 치료라고도 한다. 탄소이온을 빛의 속도 70%까지 싱크로트론(입자가속기)에서 가속해 암세포에만 명중하도록 한다. 정확성과 안전성, 효율성이 현재 나온 암 치료법중에 가장 높다고 볼 수 있다. 단, 중입자 치료기 설치 및 건립 비용이 최소 2,000억 이상 요구되기 때문에 현재는 한정적인 국가에서 도입운영.
중입자가 정상 조직을 피해서 암세포만 공격할 수 있는 것은 물리학 용어로 ‘브래그 피크(bragg peak) 현상’ 덕이다. 중입자 에너지가 목표 지점(암 덩어리)에 도달했을 때 최대로 방출되는 것을 말한다. 요즘 첨단 암 치료법으로 양성자가 쓰이는데, 생물학적 효과는 중입자가 양성자보다 질량비가 12배 높다. 질량이 무거운 만큼 암세포가 받는 충격 강도도 그만큼 크다. 중입자는 이처럼 입자가 무거워 중입자로 불리며, 영어로는 헤비 파티클(heavy particle)이라고 한다.
전 세계 15곳에서 운영 중
방사선 치료에 가장 흔히 쓰이는 X-선은 피부에서부터 몸속 암세포에 도착하기까지 모든 생체 조직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정상 세포의 손상을 고려해 에너지를 약하게 조정해야 한다. 반면, 중입자는 신체 표면에서는 방사선량이 적고 목표한 암 조직에서 에너지의 대부분을 발산한다. 암세포 외 다른 정상 조직에 영향을 최소화하기에 치료 효과뿐만 아니라 환자가 겪는 치료 후 부작용과 후유증도 적다. 치료 시간도 환자 한 명당 2분 정도에 불과하다. 그래서 중입자 치료 시간이 환자가 치료를 받으려고 옷을 갈아입는 시간보다 짧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중입자 치료기는 현재 일본 등 아시아와 유럽 위주로 약 15곳에서 운영되고 있다. 일본이 7곳으로 가장 많고 독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등에서도 운영 중이다. 미국은 중입자 치료 도입이 지지부진하다가 메이요 클리닉에서 2028년 운영을 시작할 예정이다.
국내에서는 연세대 암병원이 2년 전부터 가동해 운영 중이다. 처음에는 전립선암만 치료하다가 요즘에는 폐암, 두경부암 등에도 확대 적용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은 2031년 가동을 목표로 준비 중이고, 서울대병원은 경남 동남권원자력의학원 암센터에 기기를 도입하려 한다.
의학물리의 진화, 중입자 치료
중입자 치료 대상 암은 덩어리 형태의 모든 고형암이다. 전신으로 퍼지는 혈액암, 말기암, 재발암 등에서는 활용이 어렵다. 중입자는 특히 분자생물학적으로 산소가 부족한 환경의 암세포에 강력한 효과를 보인다. 이러한 저산소 암세포는 혹독한 조건에서도 살아남았을 만큼 생명력이 아주 강하다. 100배 이상의 방사선 조사량에도 견디며 항암제 역시 침투가 어렵다. 대개의 난치성 암이 저산소 암이다.
즉 중입자 치료는 난치암에 특화된 셈이다. 앞으로 5년 생존율이 30% 이하여서 3대 난치암이라고 꼽히는 췌장암, 폐암, 간암에서 생존율을 2배 이상 끌어올리는 데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뇌암, 두경부암, 골·연부조직 육종, 척삭종, 악성흑색종 등의 희귀암, 난치성 전립선암 치료 등에서도 널리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 암 치료는 의학과 과학이 만나 위대한 성취를 이뤄가며 발전하고 있다. 의학물리의 화려한 진화가 바로 중입자 치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