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 이야기

1963년부터 63년간 걸어온
약사의 길

미보약국 김태형 약사*

1963년 ‘미보약국’ 문을 연 김태형 약사는 지난 7월 4일 약국 문을 마지막으로 닫았다. 부산대 약대를 졸업하고 마산에 약국을 개업한 그는 팔순을 훌쩍 넘기기까지 63년간 약국을 운영해왔다. 긴 세월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약사 가운을 입고 지낸 영원한 약사를 <동아약보>가 만나봤다.

편집실 사진 백기광, 송인호, 윤선우
영상 김수현

미보약국. 마산어시장과 아구찜거리 사이 번화한 거리에 자리한 이 지역 터줏대감이다. 피부약 전문임을 강조하기 위해 ‘미보약국’으로 약국 이름을 지었을 만큼 피부약 잘 짓기로 소문이 났었다. 당시 병원 문턱이 높은 탓에 피부질환이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약국을 찾아 치료했고, 김태형 약사는 잘 듣는 약을 조제하기 위해 따로 공부도 하며 열심이었다.

“약국 이름에 직접적으로 ‘피부’라는 단어를 사용하면 법적 문제가 있어 최대한 피부를 연상할 수 있도록 발음이 비슷한 단어인 ‘미보’를 선택했죠. 피부약 잘 짓는다는 소문이 멀리까지 났는지 부산을 비롯해 타 지역에서도 환자들이 많이 찾아왔습니다.”

김 약사는 아토피, 습진 등 흔하지만 잘 낫지 않는 피부병으로 고민하던 사람들이 미보약국 약을 먹고 바른 후 싹 나았다는 입소문을 내면서 약국 운영에 많은 도움이 됐다고 회상한다.

# 시·도약사회장으로 지역사회와
함께한 시간

약국이 자리를 잡고, 약사회가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칠 무렵, 김태형 약사는 경상남도 약사회 회장, 마산시약사회장, JC(청년회의소)지역회장, 라이온스클럽회장 등 굵직한 감투를 쓰고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앞장섰다.

“제가 사람들과 어울리며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약사회 활동이나 지역 단체 활동을 하다 보면 주변의 어려운 분들을 도울 수 있고, 삶의 터전인 지역이 발전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탤 수 있어 보람찼습니다. 약국을 운영하다보니 외부 활동이 힘에 부칠 때도 있었지만 왕성하게 활동하던 때가 그립기도 합니다.”

약사들이 잘 뭉치기도 했고,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많은 활동을 하던 시기여서 김 약사도 기꺼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덕분에 약국도 더 알려지고, ‘좋은 일 한다’는 인사말도 들으며 보낸 호시절로 기억된단다.

# 어렵게 보낸 약대 시절

김태형 약사는 의사가 되고 싶었지만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집안 형편이 넉넉지 못해 약대로 진학했다. 약대 1학년 때에는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 학업을 이어가기가 막막했다고 한다. 당시 김 약사의 어머니는 함안에서 막걸리 공장(술도가)을 운영하셨는데, 어머니 작고 후 여동생 둘이 오빠의 학비를 마련하고자 막걸리 공장을 이어받아 운영했다.

“여동생들이 일명 ‘쿠폰’을 만들어 팔았다고 하더군요. 돈을 먼저 내고 쿠폰을 구입한 후 막걸리가 필요할 때 쿠폰과 바꿔 가는 형태였습니다. 제 학비로 쓸 목돈을 마련할 길이 없자 궁여지책으로 생각해낸 아이디어였어요. 시골이라 이웃끼리 집안 형편을 잘 알다 보니 주변 분들이 쿠폰을 현금으로 많이 바꿔주셨고, 덕분에 무사히 약대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김 약사는 그렇게 학교를 마치고 약국을 개업한 후 여동생들을 마산으로 불러들여 대학까지 마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부모님을 일찍 여읜 두 여동생은 지금도 김 약사를 아버지처럼 생각하고 따른다고 한다.

# 삼국지를 열독하는 약사

김태형 약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산 열 권짜리 삼국지를 여전히 잠자리에서 읽을 정도로 삼국지 마니아다. 지금까지 전집을 읽은 횟수만도 120번쯤 된다고.

“두 아들에게 삼국지를 읽을 것을 권하며 ‘삼국지를 열 번 넘게 읽은 사람과는 싸우지 마라’고 했습니다. 삼국지를 많이 읽은 사람의 지혜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뜻이지요. 삼국지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두 아들도 삼국지 안에서 삶의 지혜를 얻길 바랐습니다.”

또 자녀들에게 “때때로 1+1이 2가 아닐 수도 있다”라며 융통성 있는 사고를 하라고도 가르쳤다. 세상을 살다 보면 손해를 볼 때도 있고, 뜻하지 않은 운이 따르기도 하니 넓은 시각으로 세상을 봤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 손녀가 다시 미보약국 문을
여는 날을 기다리며

얼마 전 주변의 피부과 의원이 폐업하면서 김태형 약사도 드디어 약국 문을 닫을 결심을 했다. 평생 남편을 내조하고 약국 일을 거드느라 애쓴 아내와 오붓한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약사로 살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아픈 사람을 도와줄 수 있으니 행복할 수밖에요. 하지만 이제 자녀들도 자리 잡고 다 잘 살고 있으니 좀 쉬어도 좋겠지요. 아내와 손잡고 이곳저곳 구경도 하고, 동네 노인복지관도 다니면서 시간을 보내려고요.”

김 약사는 미보약국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에 일부러 찾아와 인사를 건네는 주민들과 눈물까지 보이며 아쉬워하는 사람들을 보며 ‘참 잘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할아버지의 미보약국 문을 다시 열겠다”는 중학교 3학년 손녀의 말이 또 하나의 희망을 준다며 웃는 그의 얼굴이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