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자 면역세포에
암 추적 장치 붙여 공격하는
카티(CAR-T) 치료
한 번 주입으로 백혈병 완치라는 엄청난 결과를 내는 ‘카티(CAR-T) 치료’.
그 원리는 환자 면역세포에 암을 찾는 장치를 붙여 암세포를 공격하는 것이다.
현재 국내에서도 10여 곳의 카티센터가 운영되며 백혈병 치료에 희망을 불어넣고 있다.
글 김철중 조선일보 의학전문기자
킴리아 투여 후 사라진 암세포
2017년 8월 30일은 백혈병 치료의 역사적인 날이다. 전 세계 의약품 사용 표준이 되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백혈병 환자에 대한 유전자 치료법을 처음으로 승인했기 때문이다. 그 주인공은 스위스 글로벌 제약사 노바티스가 개발한 유전자 치료법 ‘킴리아(Kymriah)’다.
킴리아는 악성 소아 백혈병에 걸려 생명이 꺼져가던 소녀를 한 번의 치료로 극적 소생시킨 치료제로 유명하다. 미국 필라델피아에 사는 5세 소녀 에밀리 화이트헤드는 몸 구석구석에 멍이 들기 시작했다. 동네 병원에 가서 그 이유를 살폈더니 혈액암의 일종인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이 원인이었다. 그때가 2010년 5월이었다. 에밀리는 1년 넘게 백혈병 치료를 받았지만 상태가 좀처럼 좋아지지 않았고, 결국 병원에서 기존 치료에 반응이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에밀리에게 주치의는 ‘마지막 카드’로 임상시험을 제안했다. 이에 에밀리 아버지는 신약을 임상시험 중인 병원을 찾아다녔다. 그 과정에서 펜실베니아대학과 노바티스 제약사가 개발 중인 킴리아를 만날 수 있었다. 에밀리는 2012년 세계 최초로 이뤄진 킴리아 1호 임상시험 대상자가 됐다.
이후 기적이 일어났다. 킴리아를 투여받은 지 두달 만에 에밀리 핏속에 흐르던 암세포가 싹 사라진 것이다. 첫 임상시험에서 완치라는 놀라운 성과를 냈으니 의학계는 킴리아에 ‘기적의 항암제’라는 타이틀을 선사했다. 에밀리는 매년 ‘암이 재발하지 않았어요’라고 쓴 팻말을 든 채 웃고 있는 사진을 인터넷에 올려 수많은 암 환자에게 희망을 안겨주고 있다. 완치 판정을 받은 당시 7세 소녀였던 에밀리는 어느덧 고등학생이 되어 숙녀로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암세포를 공격하는 면역치료의 원리
암세포와 우리 몸속 면역세포는 교묘한 머리싸움을 하며 전쟁을 치른다. 암세포는 살아남기 위해 면역세포가 자기를 공격하지 않도록 면역 억제 기능을 면역세포에 갖다 붙이는 수작을 부린다. 이러한 수작에 당한 면역세포는 눈먼 장님이 되어 암세포를 보고도 공격하지 않는다. 암세포는 맘 놓고 세력을 키워서 우리 몸을 파괴하고 점령한다.
그런데 킴리아는 그 면역세포가 새롭게 태어나 암세포를 공격하게 하는, 새로운 방식의 치료법이다. 맥을 못 추던 면역세포에 새로운 무기를 달아주어 전쟁에서 승리하도록 하는 것이다. 방식은 이렇다. 암 환자의 혈액을 뽑아서 대표적인 면역세포인 T세포를 채취한다. 그다음 실험실에서 암세포를 공격하도록 유전자를 변형하여 암 환자에게 다시 주입한다. 환자의 원래 면역체계를 치료에 이용하기에 ‘면역치료(immunotherapy)’라고도 부른다.

한 번 주입으로 혈액암 완치
유전자 변형 후 암 환자의 체내에 다시 주입된 T세포는 표면에 암세포를 식별할 수 있는 특정 항원을 인지, 공격하는 ‘암세포 추적 장치’가 탑재돼 있다. 암세포를 정확히 찾을 수 있도록 일종의 내비게이션을 달아준 셈이다.
새롭게 변신한 T세포는 암세포만을 정확하게 포착해 파괴하기 때문에 ‘암 암살자’라고 불린다. 기존의 항암제나 방사선 치료가 암세포 덩어리를 무차별 공격하는 것과 달리, 유전자 변형 T세포는 오랫동안 체내에 머무르며 암세포만 골라 죽인다. 그러니 한 번 주입으로 완치라는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의 암 치료를 ‘카티(CAR-T) 치료’라고 부른다. 의학적으로는 키메라 항원 수용체를 장착한 T세포 치료제를 뜻한다. 한 손에는 암을 때려잡는 무기를 장착하고 또 다른 한 손에는 암을 잡아내는 갈퀴를 갖고 있다 해서 키메라라고 부른다. 키메라는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사자, 양등이 한 몸에 존재하는 독특한 생명체다.
카티 치료는 단 한 번만 적용해도 기존 치료에 반응이 없어 속수무책이던 혈액암을 완치할 수 있다. 혈액암 치료에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다.
암 정복을 앞당길 희망의 신호
국내에도 카티 치료가 도입되어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60대 후반 C씨는 혈액암의 일종인 미만성 거대 B세포 림프종 환자다. 여러 대학병원을 돌며 총 여섯 번에 걸쳐 항암 치료를 받았지만, 호전과 악화가 반복되며 계속 암세포가 살아남았다. C씨는 마지막 희망을 걸고 카티 치료 임상시험에 임했다. 8개월이 지난 지금, 몸속의 모든 암세포가 사라졌다.
원래 노바티스에서 출시한 킴리아는 비용이 약 5억5,000만 원에 달하는 고가의 치료제였다. 다행히 2022년부터 건강보험이 적용되면서 환자 부담이 600만 원 정도로 줄었다. 지금은 더 많은 환자들이 ‘더 가까이’에서 치료받을 수 있도록 카티센터가 삼성서울병원, 서울성모병원, 서울아산병원,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고려대안암병원, 울산대병원, 여의도성모병원, 분당차병원, 가천대길병원, 동아대병원 등 전국 10여 곳에서 운영되고 있다.
환자의 면역세포인 T세포를 밖으로 꺼내 실험실에서 유전자를 변형하고 다시 환자 몸속에 주입한다. 그렇게 재탄생한 T세포가 암세포만 골라죽이는 카티 치료. 현재는 혈액암 계열에 적용되나 췌장암, 폐암 등 난치성 암 치료에도 확장 적용하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카티 치료가 암 정복을 앞당길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