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사하는 삶을
꿈꾸고 실천하는 약사
김명민약국
김명민 약사*
이웃에게 꿈과 희망, 용기는 주는 모임 ‘꿈사모’를 만들어 10년간 꾸준히 활동을 이어온 김명민 약사. 지역사회의 크고 작은 일에 빠지지 않고 따뜻한 손길과 마음을 내어준 그는 이 지역 사람들에게 ‘고향’과도 같은 존재다.
글 편집실 사진 송인호, 윤선우
영상 김수현



# 나고 자란 송정동에 약국을 차린
김명민 약사
1970년 광주 송정동에 ‘김약국’이라는 간판을 달고 약국 문을 연 김명민 약사는 송정동에서 나고자랐다. 성인이 되어서도 약대를 다닐 때와 군복무를 할 때를 빼곤 이곳을 떠나본 적이 없다. 송정동은 김 약사에게 삶 그 자체다.
“60, 70년대는 저뿐 아니라 모두가 힘들게 살 때 였습니다. 1961년 광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의 중앙대 약대에 합격해서 친척 집을 전전하며 어렵게 대학을 졸업했어요. 군 복무까지 마친 후 곧장 고향으로 내려왔습니다. 다른 지역에서 살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요.”
고향에서 약국을 개업하고 약사를 천직으로 여기며 열심히 살았다. 동네 주민들이 편하게 들어와서 쉬었다 가고, 조금이라도 아프거나 묻고 싶은 것이 생겼을 때 언제든 들를 수 있는, 사랑방같은 약국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누구든 반갑게 맞이하고, 약에 대한 상식이나 불편한 증상에 대해 성심껏 상담을 했다. 건강 상식과 도움이 될만한 문구를 약국 내에 크게 걸어두고 사람들이 쉽게 볼 수 있도록 한 것도 그 같은 맥락에서다.
“약국을 운영하면서 약을 통해 세상을 배웠습니다. 이곳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으며 살았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지역 주민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노력한 시간들
1991년 제1대 광주광역시의회 의원으로 당선되면서 김명민 약사의 지역사회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도움이 손길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갔고, 지역 발전을 위해서 여러 단체의 ‘장’을 맡으며 고향이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하는 데에 힘을 보탰다.
“초대 의원으로 활동하면서 광주광역시 내무위원장, 체육회 이사, 5·18 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심의위원 등을 맡아서 임무를 수행했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2, 3대 시의회 의원도 역임하게 됐습니다. 그즈음 약국도 제 이름을 넣어 ‘김명민 약국’으로 바꾸기도 했지요.”
1994년에는 동아제약에서 협찬하는 제21회 약사금탑을 수상하기도 했다. 시의회 의정활동을 통해 약사의 권익 신장은 물론, 국가와 지역 발전을 위해 노력한 공로를 인정받아 수상자로 선정됐다. 이 외에도 광주광역시 광산구 재향군인회 회장 역임, 남송약사 대상 수상, 자원봉사 1,000시간 달성 대한적십자사 총재 표창, 광주고등학교 개교 70주년 ‘자랑스러운 광고인상’ 수상 등 그가 걸어온 길을 대변하는 각종 수상과 직책이 A4 한 장을 빽빽하게 채우고도 넘친다.


# 남은 생에 할 일도 봉사
약국을 개업한 1970년부터 김명민 약사의 지난 56년에 걸친 행보는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활동과 봉사활동이 핵심이다. 2014년에 창립한 꿈과 희망, 사랑 나눔 모임인 ‘꿈사모’도 그가 오랫동안 품어온 생각을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 김 약사가 회장직을 맡고 있는 본부팀, 송정1동, 송정2동 봉사팀, 도산동, 어룡동 봉사팀, 향군 봉사팀을 포함해 총 362명이 꿈사모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더불어 사는 세상에 꿈과 희망을 더하고, 우리의 작은 나눔의 삶이 공동체 사회를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했습니다. 처음 출범할 때 지속성에 대해 걱정하는 분도 많았지만 지난해 10주년을 맞았습니다. 참 감격스러운 순간이었지요.”
꿈사모가 지난 10년간 펼친 활동은 취약계층을 위한 김장 봉사, 주거공간 개선, 장애인 시설 후원, 의료 봉사, 유니세프 후원 등 이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광범위하고 촘촘하다. 구민들의 자발적인 봉사 모임으로 출발했으나 이제는 구를 넘어 광주광역시 전역으로 퍼져가고 있다.
“꿈사모 활동을 돌아보니 모든 순간이 기적 같지만, 특히 2017년 꿈사모가 주도해 우리 고장 출신 독립운동가 이경채 선생의 공적비를 선생의 모교인 송정동초등학교에 건립한 일이 기억에 남습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한 분을 위해 무언가 할 수 있었다는 것이 참 보람됐지요. 또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혼란스러웠을 때도 고생하는 분들을 위해 마스크 지원을 비롯해 위로와 후원을 적극 펼치는 등 어려움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는 우리 회원들이 참 자랑스러웠습니다.”
80세를 훌쩍 넘겼지만 여느 젊은 사람 못지않게 활동적인 김 약사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30분 동안 스트레칭을 하며 하루의 에너지를 모은다. 손끝부터 발끝까지 빠짐없이 몸을 깨우고 혈액순환을 증진하는 루틴을 꾸준히 이어왔기에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또한 그는 약사로서 충만한 삶을 보낸 것도 다양한 활동을 지속해나가는 원동력이 됐다고 덧붙였다.
“매일 약국 문을 여닫으며 지금까지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약국에서 세상을 배웠고, 약국 덕분에 제 삶이 풍요로울 수 있었습니다. 또 봉사를 하며 다시 한번 제 삶의 의미를 찾게 됐습니다. 힘이 닿는 한 약국을 지키며 봉사하는 삶을 계속 이어갈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