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만병통치약으로 진화하는
GLP-1 호르몬 작용제
벌써부터 노벨의학상은 따놓은 당상이라는 분야가 있다. 흔히 위고비라고 부르는
지엘피-원(GLP-1) 호르몬 작용제 또는 증강제를 두고 하는 말이다. 소장에서 분비되는 GLP-1 호르몬의 기능을 강화하는
이 약물이 인류의 큰 고민거리였던 비만, 당뇨병, 신장병, 심장병을 줄줄이 개선하고 있다. 이 때문에 GLP-1 증강제의 등장을
인류가 처음으로 병균과 맞설 수 있게 한 항생제에 비유하기도 한다. 의사와 환자가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이 요원하던 대사질환의
숙제를 거침없이 해치우고 있으니 말이다. 의사들이 GLP-1 호르몬을 슈퍼 호르몬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글 김철중 조선일보 의학전문기자
GLP-1 호르몬 발견의 역사를 다룬 서울대의대 내분비내과 조영민 교수의 저서 『슈퍼 호르몬』에 따르면, 1983년 시카고대 그레임 벨 교수는 인슐린과 반대 작용을 하는 글루카곤 유전자를 발견한다. 글루카곤 유전자 속에 유사한 다른 유전자가 숨어 있었는데, 그는 이를 글루카곤 유사펩티드-1(GLP-1)으로 이름 지었다. GLP-1 약물의 출발점이다.
하지만 발견 당시에는 GLP-1이 어떤 일을 하는지 몰랐다. 4년 후 하버드의대 여성 과학자 스베트라나 모이소프 박사가 활성형 GLP-1을 합성했다. 이것을 쥐에게 투여하자 인슐린 분비가 20배 늘었다. 향후 기적이 일어날 것을 알리는 타종이었다. 그러나 그 상태에서는 약물로 쓰기에 물질의 안정성이 매우 약했다.
시간이 지나 뉴욕 브롱스의 재향군인병원 존엥 박사가 아메리카 도마뱀의 타액에서 GLP-1의 사촌 격인 단백질을 발견한다. 기능은 유사한데 혈액 속에서 물질로 안정화됐다. 이 성분은 2005년 최초의 GLP-1 계열 약물로 태어났고, ‘바이에타’라는 이름으로 미국식품의약국으로부터 2형 당뇨병 치료제로 승인을 받는다.
곧이어 사람 GLP-1을 안정하게 만든 리라글루타이드가 당뇨병약으로 승인을 받는다. 이 약물은 나중에 용량을 늘려 비만치료제인 ‘삭센다’가 된다. GLP-1 호르몬 계열 약물의 진화가 줄줄이 일어난 것이다.
GLP-1이 우리 몸에서 하는 일
GLP-1 호르몬 기능을 올리는 약제는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여 최근 화제의 중심인 강력한 비만치료제 위고비까지 왔다. 위고비를 투여했더니 믿기지 않는 체중 감량이 일어났다. 최근에는 이와 유사한 ‘마운자로’라는 약도 개발되었는데, 위고비보다도 체중 감량 효과가 높게 나오고 있다.
GLP-1이 대체 무슨 일을 하기에 이런 기적이 일어나는지 자세히 알아보자. 먼저, 우리가 삼킨 음식은 위에서 잘게 부서진 후 십이지장으로 조금씩 내려간다. 그러면 췌장에서 소화액과 소화효소를 내보낸다. 탄수화물은 포도당과 같은 단당류가 되어 소장을 가득 덮고 있는 장세포를 통과해서 혈액으로 들어간다. 그때 장세포 사이에 보초를 서고 있던 위장관 내분비세포가 조용히 GLP-1 호르몬을 분비한다.
이 신호를 받은 췌장의 베타세포는 인슐린을 내보내기 시작한다. 그러면 식후 혈당이 치솟지 못하고 그대로 누그러진다. 장을 통해서 더 많은 당이 들어오면 위장관 내분비세포는 더 많은 GLP-1 호르몬을 내보내 위장에게 음식물을 천천히 내려보내라고 지시한다. 그러면 위장은 짓이긴 음식물을 쥐고 있다가 소량씩 십이지장으로 보낸다. 그 결과, 식후 혈당은 조금 솟는 척하다가 다시 내려간다.
한편 GLP-1은 뇌로도 신호를 보내 이제 그만 먹으라고 포만감을 유도한다. 소장에서 시작된 GLP-1 신호가 혈류를 타고 온몸을 여행하며 췌장과 위장, 뇌까지 퍼지는 것이다.
GLP-1 기능을 늘리는 증강제는 이러한 방식으로 식후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고, 위 운동을 감소시키며, 포만감을 조기에 증가시키고, 식욕을 억제한다. 그 결과, 자기 체중의 15~20%가 감소된다. 식후 혈당이 치솟던 스파이크는 사라지고 곡선이 완만해진다. 당뇨병 관리 지표인 당화혈색소는 6.5% 이하가 정상인데, 증강제로 2% 이상 감소한다. 그러기에 당뇨병 발병 예방 효과가 있다.
현대판 만병통치약으로 진화 중
마운자로는 GLP-1에 더불어 GIP 호르몬 작동도 활성화는 이중 작용제이다. GIP(위 억제성 폴리펩타이드)는 장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식후 혈당이 높아졌을 때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위산 분비를 약하게 억제하는 기능도 있다. 두 개의 호르몬을 동시에 활성화한 것이 마운자로다. 임상시험에서 기존 GLP-1 계열 대표주자인 위고비보다 더 높은 체중 감소 효과를 보여, 시장의 판도를 바꿀 신약으로 평가받는다.
몸무게가 100kg 나가는 사람이 기존 비만약을 먹으면 5kg 정도 빠진다. 같은 기간 동안 삭센다를 맞으면 약 8kg 정도 빠진다. 위고비를 맞으면 15kg, 마운자로를 맞으면 20kg까지도 빠진다. 꿈쩍도 않던 체중이 눈 녹듯 사라지니 기적이 아닐 수 없다. 혈당도 인슐린을 쓸 때보다 더 크게 떨어진다.
GLP-1 약물의 효과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심혈관질환 발생이 줄어든다. 당뇨병에 의해 망가진 콩팥이 만들던 단백뇨도 줄인다. 지방간이 좋아지고, 수면 무호흡증이 개선된다. 파킨슨병의 악화를 막을 가능성도 보여주고 있다.
GLP-1 호르몬 증강제의 혁신은 현재 진행형이다. 매일 맞던 주사를 일주일에 한 번 맞게 되었고, 이제는 한 달에 한 번 맞는 것도 개발 중이다. 먹는 약으로도 개발되고 있다. 하나의 약제가 여러 호르몬의 역할을 겸하는 다기능 복합제도 만들어졌다.
공룡처럼 커져가던 비만과 대사질환이 GLP-1 증강제의 진화로 마침내 잡혀가고 있다. 가히 현대판 만병통치약이 등장했다고 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