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 이야기

55년간 이어온
지역의 ‘약국’이라는 이름

세일약국 김홍 약사*

어느 골목길에는 세월이 모여 흔적이 되어 남는다. 서울 근교의 한적한 동네, 화전동에는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지역을 보살펴온 작은 약국이 있다. 바로 세일약국, 그리고 그 안을 지키는 김홍 약사의 이야기다.

편집실 사진 송인호
영상 김수현

김홍 약사가 화전동에서 약국을 연 것은 1971년 7월의 일이다. 경북 구미에서 태어나 영남대 약학과를 졸업하고 제약회사에서의 짧은 직장 생활을 거친 뒤, 가진 것 없이 화전동에서 약국을 개업했다.

“여의치 않아서 이 동네까지 오게 됐지요. 이렇다 할 의료 시설이 없던 동네에 약국을 개업하고 어느덧 5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저에게는 제2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 됐어요.”

뿌리내리기로 마음먹은 때부터 이 동네는 그의 두 번째 고향이 되어갔다. 그가 약사로 살아온 지난 55년은 단순한 생계가 아닌, 지역과의 깊은 인연 그리고 헌신의 기록이다.

# 약사의 역할, 그 너머의 소명

약국은 낮에는 이웃 어르신들의 쉼터이고, 저녁이면 불이 환하게 켜진 ‘마을 지킴이’가 된다. 김홍 약사는 단지 약국을 운영하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병원이 드물던 시절, 질병에 대한 크고 작은 상담에서부터 투박하지만 진심 어린 건강 조언, 그리고 ‘동네 주치의’ 역할까지 도맡았다.

“감기약을 지어주면 낫는다”는 입소문을 듣고 먼 동네에서도 찾아오는 이들이 있었다. 덕분에 자연스레 사람들의 신뢰가 쌓였고, 어느새 그는 화전동의 사연을 가장 깊이 알고 품어주는 존재가 되었다.

김 약사가 가장 보람을 느꼈던 순간은 ‘약사’라는 직업이 단순히 직업이 아니라, 인생의 숙명이었음을 체감했을 때였다. 군 입대, 가난, 그리고 여러 갈림길을 거쳐 결국 선택한 것이 약사라는 이름이었지만, 아이들부터 노년의 이웃까지 그가 건넨 약봉지는 모두의 안녕을 위한 작은 약속이 되었다.

# 위기를 기회로, 지역사회 리더십

김홍 약사의 시간에는 순탄치만은 않은 변화도 많았다. 한때는 약국 간 출혈경쟁이 심해지며 지역 약사회의 분열과 갈등이 극에 달하기도 했다. 김 약사는 약사회 회장, 고양시·경기도의원을 두루 지내며, 지역 약사들의 권익을 지키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표준 소매가 제도의 정착, 약사회관 설립, 건강보험 정책 협의 등 굵직한 변화를 주도했다.

“쉽지 않은 싸움이었어요. 반대하는 동료도 있었지만, 결국 모두 설득해내 약사회가 더욱 성장하는 기반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의 리더십 덕에 경기도 약사회관이 최초로 건립되었고, 그 공적으로 보건복지부 장관상, 약사공로상 등 여러 표창도 받았다.

또한 2000년 의약분업 도입 전후로 이 지역은 병원이 드물어 ‘조제 약국’의 예외 지역으로 남기도 했다. 김 약사는 동네 내과와 협력해 건강 사각지대를 메우고, 최근까지도 소아과, 내과 진료를 지원하는 등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왔다.

“저는 지켜야 할 게 있어요. 약국과 병원이 이 동네에 남아야 주민들이 마음 놓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제가 약국 문을 늦게까지 여는 것도 후임 없이 약국 문을 닫으면 마을 전체가 불편해진다는 책임감 때문입니다.”

# 나이 들어도 흔들림 없는 자세로

김홍 약사는 지금도 오전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변함없이 약국 문을 열어둔다. 2층에는 병원이, 3층에는 약국이 들어선 이 작은 건물에 그의 인생, 건강 관리 노하우, 마을에 대한 애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세월이 지나며 오랜 이웃들도 많이 떠났지만, 간혹 예전 주민들이 “아직도 계셨군요”라며 반가운 얼굴로 찾아온다. 그럴 때마다 김 약사는 55년 약국 운영이라는 업(業)이 이방인을 환영하고 기억을 품는 ‘동네 공동체의 심장’임을 실감한다.

김 약사는 여력이 닿는 데까지 마을을 지킬 계획이다. 약사의 역할을 고집스럽게 이어가며, 남은 세월의 마지막까지 “지역에 세일약국이 있으니든든하다”고 느끼게 해주고 싶단다.

자부심과 책임, 그리고 애정이 가득한 김홍 약사의 55년 이야기에는 세월을 이기는 한 인간의 온기와, 지역사회의 진정한 리더십이 깃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