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 이야기

다시 시작이라는
이름의 약국

숲속약국 이경아 약사 *

멈춰야 했던 시간과 다시 걷기 시작한 선택 사이에서, 이경아 약사는 ‘나답게 일하는 방식’을 고민했다. 대학병원에서 쌓아온 12년의 경험은 이제 사람의 눈을 마주하는 약국에서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편집실 사진 송인호 영상 윤선우

멈춤에서 시작된 결심

이경아 약사의 약사로서의 삶은 대학병원에서 시작되었다. 첫 직장에서 그는 기초를 다졌다. 12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는 하루 24시간, 365일 멈추지 않는 병원 시스템 안에서 약사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온몸으로 배웠다. 수많은 환자의 처방을 접하고, 여러 진료과를 오가며 약이 치료 과정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체계적으로 이해하게 된 시간이었다.

그 시간은 분명 성장의 연속이었지만, 삶의 조건이 달라지면서 어려움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이를 키우며 병원 근무를 병행하는 일은 점점 현실적인 부담으로 다가왔다. 교대 근무와 예측하기 어려운 일정 속에서, 자신만 바라보는 아이를 마주하며 그는 처음으로 ‘잠시 멈춤’이라는 선택을 고민하게 되었다. 달려온 시간을 부정하는 멈춤이 아니라, 삶의 균형을 다시 세우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렇게 병원을 떠났지만, 약사라는 정체성까지 내려놓은 것은 아니었다. 아이가 자라고 시간이 흐르자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약을 통해 사람을 만나고, 회복의 과정을 함께하는 역할을 다시 맡고 싶었다. 단순히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에게 맞는 방식으로 약사 일을 이어가고 싶다는 바람이 점점 또렷해졌다.

경험을 온전히 담아낼 공간을 꿈꾸며

“여러 진료과를 넘나들며 쌓은 경험은 저의 가장 큰 자산입니다. 각각의 처방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치료 흐름 안에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요. 저는 이 경험을 온전히 녹여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고민 끝에 탄생한 약국이 바로 지금의 숲속약국이다. 이 약국은 그에게 ‘다시 시작’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개인적으로는 삶의 리듬을 회복한 자리이고, 직업적으로는 약사로서의 방향성을 다시 세운 결과물이다. 이곳에서 그는 앞으로의 시간을 차분하게 쌓아가고자 한다.

약은 조제가 아니라 설계

이경아 약사가 약사라는 직업에 매력을 느낀 이유는 분명했다. 사람의 치료 과정에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약사로 일하며 그는 약 한 알이 환자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생생하게 체감했다. 그만큼 이 일에는 책임이 따랐고, 그 책임의 무게는 현장에서의 경험이 쌓일수록 더욱 무거워졌다.

그는 약을 단순히 조제하는 대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약은 환자의 치료 흐름과 삶의 회복을 함께 설계하는 도구다. 그래서 약을 준비할때마다, 설명을 건넬 때마다 ‘지금 이 선택이 환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를 먼저 떠올린다. 이러한 생각은 자연스럽게 약국 운영 전반에 반영되었다. 효율보다 정확성을, 속도보다 이해를 중시하는 이유다.

전문성과 친근함 사이에서

이 약국에는 유독 ‘약에 대해 물어보러 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개국 전 대학병원에서 오랜 기간 근무했고, 전문약사 자격을 갖추고 있다는 이력 덕분에 자연스럽게 신뢰가 형성된 결과다. ‘여기라면 잘 설명해 줄 것 같다’는 기대를 안고 찾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경아 약사는 그 신뢰가 거리감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주의한다. 일부러 더 친근하게 다가가고, 질문하기 쉬운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전문성과 접근성, 그 두 가지가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약국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질문이 많은 약국은 그만큼 신뢰받는 약국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진심을 담아 소통하는 마음

약국을 찾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피로가 묻어 있는 경우가 많다. 병원 진료와 긴 대기 시간을 거쳐, 아픈 몸을 이끌고 마지막으로 도착하는 곳이 바로 약국이기 때문이다. 이경아 약사는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숲속약국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것이 바로 사람을 대하는 태도다. 한 사람 한 사람과 눈을 맞추고, 짧은 순간이라도 진심으로 소통하려 노력한다. 같은 약을 받더라도 마지막 경험이 편안하고 기분 좋다면, 하루의 기억이 달라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짧지만 정확하게, 기억에 남도록

숲속약국이 자리한 곳은 오피스 밀집 지역이다. 바쁜 직장인들이 주로 찾는 만큼, 설명 방식에도 전략이 필요하다. 장황한 설명보다는 지금 꼭 알아야 할 핵심 복약 포인트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졸음을 유발할 수 있는 약에는 ‘운전은 조심하세요’라는 문장을 분명하게 덧붙인다. 스테로이드 감량 복용처럼 복잡한 경우에는 색깔 펜을 사용해 복용 순서를 한눈에 알아보도록 정리한다. 짧지만 정확하게, 그리고 기억에 남도록 설명하는 것. 이것이 그가 지키는 복약 지도의 원칙이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발전하는 약사

이경아 약사가 ‘약사가 되길 잘했다’고 느끼는 순간은 특별한 한 장면으로 남아 있지 않다. 대신 매일의 일상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약사라는 직업 덕분에 좋은 직원들과 좋은 환자들을 만났고, 그들과 함께 웃으며 하루를 보내왔다는 그. 그렇게 쌓인 평범한 하루들이 이 약국을 지탱하는 힘이다.

빠르게 변하는 의료·약업 환경 속에서 그는 약국의 역할 역시 변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제는 ‘나만의 포인트가 있는 약국’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단순히 약을 주고받는 공간이 아니라, ‘저 약국에서 준 약은 정말 잘 듣더라’, ‘내 상황에 맞춰 영양제를 정확히 짜준다’는 기억으로 남는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발전하려는 자세를 잃지 않아야 합니다. AI의 발전과 약사 배출 증가로 환경이 녹록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시대를 탓하며 주저앉기보다는 변화에 발맞춰 각자의 강점을 찾아가야 해요. 현실을 직시하며 그 안에서 계속 성장하는 약국 문화. 그 흐름을 함께 만들어가는 동료들이 많아지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