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한 장기를
만들어 쓰는 시대
바이오 3D 프린팅
장기가 망가지면 이식이 유일한 해법이었던 시대가 지났다. 환자의 몸에 꼭 맞는 조직과 장기를 ‘만들어 쓰는’ 기술이 현실이 되고 있다. 바이오 3D 프린팅은 맞춤형 임플란트를 넘어 실제 이식용 조직·장기를 제작하는 단계로 빠르게 발전 중이다. 생명을 살린 실제 사례부터 국내 연구 성과까지, 재생의학의 미래를 여는 기술을 들여다본다.
글 김철중 조선일보 의학전문기자
생명을 살린 맞춤형 3D 프린팅
영국 런던에 사는 루시 바우처라는 이름의 3살 아이는 두개골에 큰 구멍이 생기는 선천성 피부 무형성증이라는 희귀질환을 가지고 태어났다. 두개골 한 자리가 텅 비어 있었고, 뇌는 밖으로 드러난 채 얇은 막으로 덮여 있었다. 그 구멍이 너무 커서 루시의 뇌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했다. 외부에서 바이러스가 침입하면 당장이라도 뇌수막염에 걸릴 처지였다.
런던 병원의 의사들은 루시를 위해 생체의학 3D 프린팅 기술에 눈을 돌렸다. 결손된 루시의 두개골에 딱 맞는 맞춤형 두개골을 만들어 이식하기 위해서다. 루시의 두개골을 CT로 스캔을 했고, 그 데이터를 사용해 3D 모델의 두개골 임플란트를 만들었다.
몸에 이식해도 이상 반응이 나타나지 않을 생체적합성 재료를 사용해 두개골 임플란트를 프린팅했다. 그 이식물은 루시의 두개골에 이식됐고, 주변 뼈와 융합됐다.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루시의 두개골은 완전히 복원됐다. 바이오메디컬 3D 프린팅 기술이 한 생명을 살렸다.
미국 미시간에 사는 지미 G.라는 사람은 자동차 사고로 얼굴에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부상이 너무 심해 턱이 완전히 부서졌고, 음식을 먹거나 말을 하기도 어려웠다. 미시간대 의사들도 지미의 턱을 위한 맞춤형 임플란트를 만드는 데 생체의학 3D 프린팅 기술을 사용했다. 그들은 티타늄 합금을 사용해 지미의 턱을 만들었다. 강한 저작력을 견디기 위한 조치였다. 그렇게 만든 임플란트는 지미의 턱에 이식됐고, 융합이 잘 이뤄졌다. 지미는 턱을 예전처럼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수술의 한계를 넘는 정밀의료 기술
바이오메디컬 3D 프린팅 기술은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보여준다. 암 수술에도 이용된다. 두개골 밑에 생기는 암인 척삭종을 앓은 남자 환자가 있었다. 종양은 두개골 하부에 위치해 뇌와 척수에 큰 손상을 주지 않고는 제거하기가 어려웠다. 의사들은 환자의 두개골 CT 데이터를 바탕으로 암 수술로 비워질 뼈와 근육을 계산해 그 자리를 채워줄 임플란트 3D 모델을 만들었다. 종양 제거 후 남은 공간에 정확히 맞도록 설계해 주변 뼈와 조직을 지탱하도록 한 것이다. 이로써 애초에 불가능해 보였던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환자는 암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국내에서도 임상 적용 가속
국내에서도 3D 바이오 프린팅 기술을 임상에 적용하려는 시도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조직·장기 재생을 목표로 하는 3D 바이오 프린팅은 단순한 보형물 제작을 넘어 실제 체내 이식용 조직·장기를 생체 재료와 세포를 이용해 제조하는 의료 기술로 발전하고 있다. 가톨릭의대 연구진과 서울성모병원은 환자의 성체줄기세포를 기반으로 한 3D 바이오 프린팅 인공 기관(trachea)을 만들어 환자에게 이식하는 데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 이 인공 기관은 환자의 기도 결손 부위와 동일한 구조로 맞춤 제작됐고, 수술 후 6개월간 추적 관찰 결과 성공적인 생착이 확인됐다. 난치성 기관 결손 환자에게 새로운 치료 옵션을 제시한 사례다.
맞춤형 의료부터 재생의학까지 확장
이처럼 바이오메디컬 3D 프린팅 기술은 최근 몇 년 사이 큰 발전을 이뤘다. 특히 치과 분야에서는 환자 맞춤형 임플란트 제작에 3D 프린팅이 대세가 됐다. 치과 임플란트, 인공관절, 보청기처럼 환자마다 모양을 달리해야 하는 의료기기에 개인 맞춤형 제작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환자의 해부학적 구조에 완벽히 맞는 임플란트는 기능적으로 우수하고 합병증 위험을 줄일 수 있다.
환자의 턱뼈에 맞게 설계된 인공치아는 빠진 치아를 정밀하게 대체한다. 인공관절은 자연스러운 동작을 돕고, 척추 부상이나 퇴행성 질환 환자를 위한 맞춤형 척추 임플란트도 개발되고 있다. 유방절제술을 받은 환자를 위한 맞춤형 유방 임플란트도 실제 임상에서 활용된다. 환자의 남은 유방과 크기·형태에 맞춰 자연스러운 외형을 구현한다. 팔다리를 잃은 환자를 위한 맞춤형 보철물도 제작된다.
3D 프린팅 기술은 인체 조직이나 장기도 만들어낸다. 아직 연구 단계지만 간, 심장, 피부, 뼈와 같은 기능성 조직을 인쇄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다. 이런 생체 조직은 신약 개발에도 활용된다. 인간 장기를 모사한 조직을 활용해 약물을 미리 시험함으로써 더욱 정확하고 효율적인 약물을 개발할 수 있게 됐다. 질병 모델링에도 활용돼 질환의 근본 메커니즘 연구와 치료법 개발에 기여한다.
또한 의료 교육과 외과수술 훈련용 해부학적 모델 제작에도 쓰인다. 의사들은 이를 통해 복잡한 수술을 사전에 연습하고 새로운 수술 기법을 개발한다. 환자 맞춤형 모의 장기 모형을 제작해 수술 전 시뮬레이션에 활용하는 병원도 늘고 있다. 이는 실제 수술 시간 단축과 정확도 향상에 기여한다.
기술을 넘어 치료로 이어지는 변화
바이오 프린팅 기술은 궁극적으로 환자에게 이식할 수 있는 기능성 조직과 장기를 만들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조만간 손상되거나 병든 장기를 대체할 인공 장기를 제작해 이식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생체 친화적 재료로 제작한다면 면역거부반응 위험도 낮출 수 있다. 이식 장기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기여할 전망이다.
임상 적용을 전제로 한 인공 기관 이식 시도는 재생의료와 맞춤 치료 패러다임 전환에 큰 의미를 지닌다. 다만 표준화, 장기 생체 안전성, 대량생산, 비용효율성 등 해결해야 할 과제도 남아 있다. 그럼에도 바이오메디컬 3D 프린팅 기술은 재생의학 혁명을 이끌 핵심 기술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