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반짝반짝
별약국의 하루
별약국 오민호 약사 *
개국은 어느 날 갑자기 내릴 수 있는 결심이 아니라, 천천히 쌓여온 마음이 자연스럽게 향하는 방향에 가깝다. 환자들이 약사의 이름 대신 얼굴로 기억해주기 시작했을 때, ‘여기라면 괜찮겠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 별약국은 그렇게 ‘지금 이 자리’에서 문을 열었다.
글 편집실 사진 송인호 영상 이성국
환자가 나를 찾기 시작했을 때
약국 개국을 결심하게 된 계기를 하나로 특정하기는 어렵다. 근무약사로 일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개국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자연스럽게 마음 한편에 자리 잡는다. 누군가의 조언처럼, 개국의 적기는 명확한 시점이 아니라 환자들이 나를 찾기 시작하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특별히 화려하지도, 능숙해 보이지도 않는 스스로에게 꾸준히 발걸음을 옮겨주는 환자가 늘어났을 때, 비로소 ‘내 약국’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 신호는 조용하지만 분명했다.
“지금의 별약국 자리를 선택한 이유 역시 감이 아닌 현실적인 판단에서 출발했습니다. 주변에 병원이 밀집해 있고, 직장인 유동 인구가 많아 안정적인 상권이라는 점이 가장 컸어요. 함께 출근하고 함께 퇴근하는 생활 리듬, 비교적 예측 가능한 근무 강도는 장기적인 운영을 생각할 때 중요한 기준이었죠.”
지하층의 한계를 넘기 위한 선택
개국 준비 과정에서 가장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인 부분은 단연 인테리어와 홍보였다. 별약국은 지하 2층에 있다. 창문이 없는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지하답지 않은 약국’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천장은 노출형으로 설계해 답답함을 줄이고, 조명은 최대한 밝게 배치했다. 대기 공간을 넉넉히 확보해 환자들이 편안하게 머물 수 있도록 신경썼다. 병원과 지상에서의 접근성이 모두 쉽지 않은 만큼, 외부에서 보았을 때 한눈에 약국의 존재를 인지할 수 있게 하는 데도 공을 들였다.
조제실도 그동안 근무하며 느꼈던 불편함을 기준으로 삼아 설계했다. 조제실과 투약 공간의 이동성을 높이기 위해 양방향 통로를 만들고, 내부의 개방감을 살리는 데 집중했다. 장비는 익숙함을 기준으로 선택했다. 조제기는 JVM, 전산 프로그램은 이전 근무 경험과 조언을 반영해 PM+20으로 결정했다.
첫 처방전이 남긴 기억
예상치 못한 순간은 언제나 가장 오래 남는다. 토요일, 외부 간판도 없고 약국을 알릴 장치도 전혀 없는 상태에서 급히 오픈한 날이었다. 약은 막 들여온 상태라 정리도 채 되지 않았고, 바코드 리더기와 카드 단말기조차 준비되지 않았다.
‘설마 오늘은 아무도 오지 않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약을 정리하고 있던 그때, 한 분이 처방전을 들고 약국으로 들어왔다. 첫 처방전, 첫 환자였다. 수기로 접수하고, 손으로 조제하고, 계좌이체로 약값을 받는 등 모든 과정이 서툴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는 “처음엔 다 그런 거죠”라며 묵묵히 기다려주었다. 그 말 한마디는 개국 초 가장 큰 응원이 되었고, 지금도 잊히지 않는 장면으로 남아 있다.
친절하지만 요점 있는 상담
약국 운영의 중심에는 늘 ‘상담’이 있다. 친절하되 장황하지 않고, 자세하지만 핵심을 놓치지 않는 상담은 별약국이 지향하는 기본 원칙이다.
“복약지도가 형식적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환자입장에서 어떤 설명이 가장 와닿을지를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전문용어보다는 이해하기 쉬운 단어를 선택하고, 짧은 시간 안에 공감을 이끌어내는 상담을 목표로 삼습니다. 이를 위해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 것도 약사가 갖춰야 할 기본 태도라고 믿고 있고요.”
계획과 현실 사이에서 배운 것들
운영 초기, 가장 크게 체감한 부분은 재고관리였다. 이 지역 상권의 수요를 파악하기 위해 다양한 제품을 들여왔고, 그만큼 반품도 잦았다. ‘재고와 구색 사이의 균형’이라는 말이 얼마나 현실적인 조언이었는지 몸소 느끼는 과정이었다. 인테리어도 완벽할 수는 없었다. 동선을 고려해 설치한 아일랜드 조제대는 예상보다 큰 공간을 차지했고, 전기 사용량도 생각보다 많았다. 결국 조제대 하단에 바퀴를 달아 이동형으로 바꾸고, 부족한 전기 코드는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보완했다. 시행착오를 인정하고 유연하게 조정하는 것도 약국 운영의 일부였다.
약을 넘어 생활까지 바라보는 상담
별약국의 차별점은 복약지도에 생활 관리 요소를 자연스럽게 더한다는 점이다. 개인적인 건강문제로 운동을 시작하면서 약물 치료와 함께 운동, 식이요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체감했다. 그래서 상담 시 약 설명에 그치지 않고, 생활 습관과 간단한 운동 방법, 식이 조절에 대한 조언을 함께 전한다. 또 하나의 작은 원칙은 환자 확인 방식이다. 생년을 묻는 대신 “몇 월 며칠 생이신가요?”라고 질문한다. 사소한 배려지만, 그 차이가 환자에게는 존중으로 전달된다.
오래 가기 위한 나만의 방식
개국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체력이 약한 편이기에, 오히려 체력 관리를 위한 실천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스스로 효과를 느낀 영양제를 직접 복용하며 경험을 쌓고, 약국 안에서 틈틈이 맨몸운동을 한다.
“멘털 관리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특별한 비법은 없어요. 크게 흔들리지 않는 성향 덕분에 하루하루를 담담히 받아들이는 편입니다. 대신 워라밸을 위해 격주 토요일에 근무약사를 초빙했고, 조제실 한편에 건담 프라모델을 전시하며 소소한 취미를 즐기고 있습니다.”
오민호 약사는 개국을 준비하는 후배 약사들에게 개국을 위해 무리하거나 손해를 감수하며 애쓰지 않기를 바란다는 당부를 전한다. 약국이 될 인연이라면, 결국 돌아 돌아 내 손으로 들어오게 된다고 믿고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면 그때부터 차근차근 준비하면 된다는 조언을 하고 싶다고.
“임장을 다니고, 계약 직전에서 무산되기도 하며, 여러 과정을 겪다 보면 어느 순간 물 흐르듯 계약이 성사되는 순간이 옵니다. 다만 ‘언젠가 되겠지’라는 막연함이 아니라, 언제 열어도 문제 없을 만큼의 준비와 자신감은 반드시 있어야 하죠. 그 균형이 개국을 오래, 건강하게 이어가게 만드는 힘이 됩니다.”